사뭇 진지하지만 가벼운 대화를 오가며 식사시간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가 아무리 길어진다고 해두 더 눈치보이기 전에 자리를 일어나야 하는거다.
분식집에서 더이상 추가주문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주인의 눈꼬리도 올라갈테니까.
새삼스레 그러한 배려심까지 챙길줄 아는 내가 대견스럽게 느껴지려는 그때
그녀의 질문하나가 그만 일어나려고 하는 나의 다리를 의자밑으로 철썩 다라붙게 만들어버렸다.
"증말 저번주 나는 니가 지난 주말에 한일을 알고있다 편을 듣고 잡은거요?"
"정말 생각이 하나두 안나서 그래요"
"그럴라면 우선 쏘주한병 시켜봐요... 그 얘기 해주려면 울화통 터져서 맹정신으로는 말하기 힘들어"
일주일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현관앞 거울앞에서 최종적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할때 터져나오는 한숨소리.
휴~ㅜㅜㅜㅜ.....
그 타이밍에 맞춰서 전화가 온다.
내 휴대폰 메모리에도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
어릴적 고향에서 위, 아래집에 살던 형이 몇년만에 전화가 오더니 요즘부쩍 통화가 잦았다.
"형 구태여 거기에 참석해야는겨?"
"이런 싸가지... 십탱구리, 너 인생 그렇게 사는거 아녀임마."
"뭐가 그리 거창해. 결혼식 참석 안하는걸루 인생까지 들먹여감서 웃기잖어. 무신 그놈아가 사이비교주고
형은 그놈아 추종하는 광신도맹쿠로."
"야, 우리아버지 돌아가셨을때처럼 니네 할머니 돌아가셨을때두 생각 안나냐? 금요일부터 일끝내구 시골로 내려와
3일동안 꼬박 장례식장 지켜주고, 조문객 치레 다하구 장지까지 앞장서주고 하던 동생이 그녀석인거야 임마, 몰르냐?"
그랬었다.
조부모세대에서도 부모님세대에서도 그리고 우리세대까지 형동생 하면서 3대에 걸친 이웃사촌
어찌보면 정말 사촌지간보다 더 가까운 동네 후배가 오늘 결혼식을 하는 날인거다.
말만 그렇게 귀찮아하듯 통화하고 있었지만, 그녀석의 결혼식을 참석해야 하는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 2%만큼 속이 쓰리는건 어쩔 수 없는일이다.
이젠 친구들도 모자라서 동생들까지 앞질러가는 그자리에 들러리로 기웃기웃 해야하는 한심하고 못난 내 청춘....
'아니 이종도 페이스(face)면 모자랄것두 없는 꽃미남표 F4구먼 왜 여자들이 안끌는거여?????'
다시 한번더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서 헤어스타일을 살짝 바꾸어본다.
"아직 안했으면 빨리 준비해라"
"이미 다하구 나가려는 참이요"
"어? 벌써? 잠깐만 기다리구 있어 니네집으로 택시타고 금방간다. 너 차 가지구 가지? 나 좀 태워가"
"이런된장... 결국 그거였어? 나 운전기사로 한탕 쎠먹었을라구?"
"야 너두 알잖냐.. 요즘같은 고유가시대에 왜 기름을 낭비해, 금방 갈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틱 끊어버리는 형은 소래포구에서 회를 뜨는 주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