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금 11층이에요"
"그거하고 밥먹는 거하고 무슨 상관있어요"
"항상 무슨일을 하던지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 둬야 하는 겁니다. 우리 밥 먹으러 갔다오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라두
고장나봐 11층까지 걸어올라 오자구? 와이구... 난 그렇게 못해. 그냥 김밥을 알아서 몇줄 사오던지, 짜장면을 배달 시키던지"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냐. 완전 매너 꽝이다 꽝"
많은 사람들속을 비켜가며 중앙동 건물들 틈에 분식집을 하나 찾았다.
간단하게 요기나 하고 영화한편 보는 시간이면 얼추 시간에 맞춰서 저녁시간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었다.
"김밥 두줄.... 한줄은 참치김밥 주시구요, 라볶이 하나, 그리고....."
"어이어이~ 아까는 그냥 간단히 먹자면서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자신감이야. 당신 얼굴이 이뻐? 돈 많아요? 그래보이지두 않느만. 겨우 몸매가 쪼금 되서
쁠라스점수 주려는 참인데 그것까지 망가뜨리면 뭘 내세우려구...."
"치~ 걱정 마세요. 내얼굴, 내 저금통장, 그리고 내몸매 너한테 맞길 일 털끝만큼도 없네요"
결국 라면까지 시켜서 먹고있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김밥만 하나두게 우적우적 먹고 있는 나다.
신라면, 너구리,짜파게티, 그리고 또.... 해물탕면.
우리집 주방 싱크대에 일렬횡대로 헤쳐모여져 있는 라면의 가짓수다.
북어국이든 콩나물국이든 끓일줄 아는 국이 하나라두 있으면 나두 지긋지긋한 라면인생좀 벗어날 수 있을거인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까 이렇게 분식집에서 조차 라면이라면 냄새가 난다.
하지만 김밥만으로 배를 채우기엔 퍽퍽하다.
그녀가 먹는 국물을 조금 공급받아 후루룩 목을 축인다.
"근데 진짜 진지하게 묻는건데요. 진짜루 백수에여?"
"에이 옆에 사람들... 분식집에 손님들두 많은데 쪽팔리게, 왜 더 큰소리로 물어보지, 확성기 갖다줘?"
나도, 그녀도 서로에 대해 아는건 거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이 두번째 만남일 뿐이고, 시간으로 따져도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둘의 사이가 더욱 진지해지는 관계로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건 이렇게 식사시간에
주고받는 대화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하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나의 백수생활. 그것에 있어서는 아직 진실을 은폐하고 싶다. 솔직히 백수. 쪽팔리잖아.....
"나 사지 멀쩡한 놈이요. 한창 팔팔하게 쌀 한가마니.... 까지는 아니더라두 암튼, 그래가지구 백수생활 하겠습니까?"
그녀가 조금 미안해 하는 눈치다.
옆테이블 손님들을 힐끗 쳐다보는듯한 뉘앙스.
김밥하나를 입속에 넣으면서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는 나다.
"대리운전해요....."
"......."
"낮에는 택배하구....."
"......"
'크크크'
입속에 김밥이 쏟아질까봐 큰소리 내지는 못하고 입은 다문체 킥킥 거린다.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직업선택이 하필 대리운전이구, 택배구
영화 '즐거운인생'의 대사하나가 불현듯 생각이 난거다.
그렇다고 변호사요, 검사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