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준수와 선화의 결혼식은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윤주와의 그 일이 있은 후 준수는 선화한테 솔직한 얘기를 다 털어놓으려 했으나 막상 선화를 만나면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준수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감정으로 선화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자신도 선화도 윤주도 모두 속이는 일이었다. 준수는 선화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선화는 윤주의 집에서 윤주 어머니와 윤주랑 함께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주가 선화한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초대한 것이었다.
선화의 핸드폰이 울렸다. 선화는 핸드폰이 울리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나야.”
준수였다.
“지금 좀 만났으면 하는데. 할 얘기가 있어.”
“알았어. 어디로 갈까?”
“회사 앞에 있는 카페 알지. 그 곳에서 만나자.”
“응. 금방 갈게.”
선화는 전화를 끊었다.
“누구에요?”
윤주가 물었다.
“준수씨. 할 얘기가 있대.”
윤주는 준수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선화한테 죄를 짓는 것 같아 선화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만 일어날게.”
“차 안 가죠 왔죠?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아가씨랑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선화와 윤주는 집을 나왔다.
밤이 깊어 있었다. 두 여인은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비탈진 길을 같이 걸어 내려갔다.
선화와 윤주는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아가씨. 사실은 할 말이 있는데.”
윤주는 준수가 하려는 말을 자기가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뭔데?”
“저... 사실은...”
그 때였다. 신호등의 파란 불이 켜지자 한 아이가 도로를 건너기 위해 뛰어 들었다. 선화는 그 아이를 향해 트럭이 돌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트럭을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선아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향해 달려들어 아이를 밀쳐냈다. 트럭은 선화를 치었고 선화는 몇 미터나 되는 거리를 나가 떨어졌다. 선화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금십자가 목걸이도 선아의 목에서 떨어져 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가씨!”
윤주는 방금 자기가 본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윤주는 선화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왔다. 선아는 정신을 잃고 있었고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제발 정신 차리세요.”
윤주는 울먹이며 말했다. 하지만 선화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준수는 카페에서 선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10분이 지났는데도 선화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준수는 다시 전화를 걸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냈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준수는 풀입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저, 윤준데요. 아가씨가... 아가씨가...”
윤주는 울먹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준수는 당황을 했다.
“아가씨가 차에 치었어요.”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화가 차에 치었다니? ”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구하고 그만...”
“지금 어디에요?”
“자애병원이에요.”
“그리로 갈게요.”
준수는 전화를 끊고 카페를 나갔다. 도로로 나온 준수는 택시를 잡아탔다.
“자애병원으로 가 주세요.”
준수는 자애병원에 도착했다. 자애병원은 선화가 일하는 병원이었다. 그 병원에 지금 선화가 차에 치어 병원으로 실려 와 있었다. 준수는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에는 선화의 부모님과 윤주가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윤주의 얼굴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선화는? 선화는 많이 다친 거에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구하고 트럭에 치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아가씨가 너무 크게 다쳐서...”
윤주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을 거에요. 선화는. 선화는 분명 괜찮을 거에요.”
준수는 윤주를 위로하며 자신의 마음도 추스렸다.
네 사람의 침묵속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만이 흘러갔다. 한참 후 선화의 수술을 집도한 선화를 아끼는 원장이 나왔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깨어나고 안 깨어나고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깨어난다고 해도...”
한 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화는 앞으로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목뼈가 부러졌어요.”
한 원장의 말에 모두 망연자실했다. 선아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