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즈음 IMF로 취업이 어려워 시골에서 집안 농사일을 돕고 있다가 서울에
괜찮은 일자리가 있으니 와 보라는 교수님 전화를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혼자만의 긴긴 서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사하고 얼마 안 돼, 한 후배가 집들이 선물이라며 치자나무를 두고 갔다.
잊지 않고 물만 주면 나중에 볼 만한 꽃이 필 테니 잘 키워 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시큰둥했다. 시골에 널린 게 꽃인데 부러 화분에 옮겨 심고 정성을 기울
인다는 건 여유 있는 사람이나 하는 소일거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츰 서울 생활에 적응 할 무렵 옆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와 친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빈 병이나 종이를 모아 생계를 꾸리셨는데, 나는 병과 종이를 모아
두었다가 드리곤 했다. 치과에서 일하는 덕에 할머니 틀니를 손봐 드리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그때만 해도 치자나무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간혹 볼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난 걸 보며 물을 주지 않아도 잘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봄 어느 날부터인가 치자나무가 생기를 잃어 갔다. 신경 써서 물을
주고 영양제까지 놓아 줘도 시들시들했다. 이상하게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담 넘어 할머니집에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 걸 보았다. '할머니집에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생각했는데 며칠 뒤 동네아주머니에게서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할머니 얼굴, 틀니, 빈 병들... 그리고 화분에 물을 준 사람도 할머니였음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할머니는 종이와 병을 준 고마움을 치자나무에 물을
주는 걸로 보답하셨나 보다. 문득 치자나무도 자신을 보살펴 주던 할머니와
함께 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승철 님/ 서울 구로구 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