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식 요리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광명시에 있는 칼국수집에 취직했다.
거기서 김영선이라는 보조요리사를 만났다.
노련한 그의 칼국수 뽑는 솜씨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잘 삶은 칼국수를 긴 대나무젓가락으로 건져 낼 때 국숫발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칼국수집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해,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박힐 만큼 국수 만드는 걸 익혔단다.
그는 내게 기술을 가르치며 늘 이런 말을 했다.
"절대 겉넘지 말아라. 국수를 건질 때는 절대 끊지 말아라. 국수가락이 끊어진 것을
손님이 발견하면 먹다 만 것을 준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헤어질 때도 그는 "어떤 음식이든 정성이다"라며 한 수 가르쳐 주었다.
훗날 내가 여자친구 문제로 급하게 돈이 필요해 불쑥 그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두말없이 20만 원을 내놓았다. 눈물나게 고마워하며 속으로 '기술도 잘 가르쳐
주더니 우정 또한 대단한 놈이군' 생각했다.
여러 식당을 전전하는 동안 그가 일러 준 말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일한 대부분의 식당 사장님은 재료 단가를 먼저 생각했다.
'하루 이틀 장사할 것도 아니니 단가가 아닌 맛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회의가 점점 늘어가던 그 즈음, 나는 한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징어볶음이 그날 식단이었는데 위에서 녹말을 듬뿍 넣어 양을 늘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그곳을 그만두었다. 요리사로서 맛이 아닌 양을 속이기 위한 요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지만
하루 빨리 요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그 직장을 그만둔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임병철 님/ 서울 양친구 신월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