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고향에 내려와 깻잎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습니다.
두 해 전 초봄 무렵입니다. 초등학생 셋이서 그 친구네 마을 저수지에 얼음을 지치러 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아이는 친구네 뒷집에 사는 아이였고, 나머지 둘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었지요.
그런데 저수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봄기운에 얇아진 얼음이 '쩌엉!'하고 갈라졌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들은 양팔로 얼음조각을 겨우 잡고는 목만 밖으로 내놓고 있었습니다.
마침 산중턱에서 나물 뜯던 아주머니가 보시고 사람들에게 알렸고, 내 친구도 저수지로 뛰어왔습니다.
모여든 사람 가운데 누구하나 차디찬 물 속으로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틀림없이 구해 줄 테니 이 아저씨만 믿고 조금만 참아라."
친구는 새끼줄을허리에 친친 동여매고 마을사람들에게 잡아 달라고 한 뒤 저수지로 뛰어들었습니다.
먼저 두 아이를 물가 쪽에 데려다 놓고, 남은 뒷집 아이를 향해 다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기진맥진한 뒷집아이는 친구의 눈앞에서 얼음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한참 동안 얼음 밑을 드나들며 아이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뒷집아이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친구는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목숨 걸고 어린 생명을 둘씩이나 구했음에도 자신을 믿고 구조를 기다리던
뒷집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뒷집 할머니를 어떻게 쳐다보느냐며 괴로워했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갔더라면... 누가 옆에 같이 뛰어들어 도와주었더라면..."
친구의 중얼거림에 내 마음도 몹시 아팠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보여 준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한송희 님/ 대전시 서구 둔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