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재작년 겨울의 일이다.
다니던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명예퇴직을 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갑자기 아내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했다.
뜻하지 않게 퇴직해 헛헛하던 차에 아내 병간호까지 하게 되고,
어느덧 연말까지 다가오니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전화가 왔다.
십여 년 전 일 관계로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몇 살 아래로 그렇게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안부를 묻기에 퇴직하고 집에서 소일하며 지낸다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한 분이시군요"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지난날 자기 어려울 때 내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크게
도움은 못 주었지만, 내가 얼마나 안타까워한 줄 아는 사람이 말이다.
예순을 바라보며 퇴직했다지만 아직 건강하고 집안 형편도 내가 일을 놓을
상황이 아닌지라 퇴직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위로나 격려는 고사하고 마치
비아냥대듯 하는 말에 순간 욱하는 감정이 솟구쳐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껏 서로간에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났던지라 그때마다 전화라도 해볼까 했지만, 문득 '상대방 역시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면 마치 아직도 나를 용도폐기된 고물처럼 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렇게 옹졸했나?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집에서 푹 쉬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는데,
그때 내가 너무 과민한 건 아니었나' 싶다.
내일쯤에는 내가 전화라도 한번 걸어 볼까?
서정욱 님/ 광주시 동구 산수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