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고등학교 입시를 끝내고 친구 제의로 '007 미팅' 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엔 길을 가다 또래 여학생만 보면 남의집 대문 옆으로 숨거나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다시 가곤 했는데, 그날은 왠지 용기가 났습니다.
친구가 건네준 쪽지에 적힌 대로 청바지 한쪽을 걷고 흰 고무신을 신은 채
경찰서 앞에 우스꽝스럽게 서 있으려니 한 여학생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앞서 걷는 그녀를 따라가며 묻는 말에 그저 "예, 예" 대답만 했습니다.
그녀는 호기심에 그저 한 번 나온 것 같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내 마음속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도 했습니다.
전화라고 해야 벨소리만 가면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지만요.
그렇게 띄엄띄엄 연락이 이어지다 대학 1학년 때 그녀가 서울로 이사 가면서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말았지요.
대학 졸업 후 전경으로 있을 때 우연히 파출소에서 그녀의 행방을 조회해보다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편지를 띄웠지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시집을 갔다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조그마한 소식이라도 알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를 기억한다면 이 주소나 전화번호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며칠 뒤 고참이 어떤 아가씨에게 전화가 왔다며 전화번호를 건네주었습니다.
제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쳤습니다.
수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수십 번, 용기를 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오래 전 그녀의 목소리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다시 만났고, 지금 그녀는 제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아내와 말다툼이 생길 때면 늘 '10년이나 그리워하고 사랑한 사람인데' 생각하며
아내에게 먼저 용서를 빌곤 합니다.
이홍복 님/ 경남 함양군 백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