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나는 몇 해 전 남편 생일이 생각난다.
귀농을 꿈꾸던 남편은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으로 이사했고,
그때 IMF를 맞으면서 우리집 형편은 무척 안 좋았다.
전 재산을 귀농 자금으로 쏟아 부은 우리는 추운 겨울
차디찬 맨바닥에서 자야 할 만큼 어려웠다.
남편 생일인 그날도 소박한 식사가 전부였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다른 때보다 학교에서 한참 늦게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서 남편을 급하게 부르는 것이었다.
"아빠, 아빠! 나와 보세요" 남편과 나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방문을 열었다.
추운 공기가 확밀려오는 순간 마당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들이 밤새 내린 눈을 쌓아 케이크를 만들고 그 위에 고드름을 꽂아
촛불을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와 눈이마주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그런데 축하 노래를 미쳐 부르기도 전에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큰애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는 천 원짜리 두 장으로 양말 두 개가 든 세트를 사려 했는데
한 켤레밖에 못 샀고요, 동생은 검정, 파랑, 빨강 볼펜을 사려 했는데
돈이 모자라 빨강색은 사지 못했어요. 아빠, 이것밖에 못 사 드려서 죄송해요.
이 다음에는 좋은 것으로 드릴게요."
그리고는 두 아이가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남편과 나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어이들을 품에 안았고 우리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그날 밤, 남편이 이불을 펴면서 말했다.
"여보, 오늘은 내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 것 같아."
이경희 님/ 경기도 양평군 양근5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