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20여 년 동안 운영하던 체육관 경영이 어려워지자 처분하고
노래연습장을 개업하셨다.
노래연습장은 밤에 손님이 많아, 아버지는 늘 피곤해하셨다.
난 짬짬이 일을 도왔고 방학 때는 간단한 청소나 심부름을 도맡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몸살에 갈려 병원에 가시고 내가 가게를 보았다.
때마침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오셔서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술에 취한 한 아주머니가 박자에 맞춰 문 손잡이를 마구 돌려 대시더니
급기야 손잡이를 망가뜨렸다.
아주머니는 왜 손잡이가 고장난 방을 줬냐며 오히려 내게 화를 내셨다.
어이가 없어 대들었고, 말다툼이 일고 말았다.
잠시 뒤 아버지가 돌아오셨는데, 내 설명을 듣고는 아주머니께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운동을 하신 아버지의 좋은 체격과 위엄 있는 목소리에 아주머니 일행은 곧
미안하다 사과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일이 수습되고 아버지가 먼저 집에 가라고 하셔서 나왔다가 두고 온 가방이 생각나 다시 가게로 갔다.
그런데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이란...
아버지가 아까 그 아주머니 일행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외면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뛰쳐나와 버렸다. 눈물이 빗물처럼 흘렀다.
체육관 하실 때, 이웃들로부터 당당하고 듬직한 분으로 인정받던 아버지셨기에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아버지를 존경한다.
자식 앞에서는 자식의 억울함을 이해해 주는 아버지, 손님 앞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가게 주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신 아버지.
"아버지! 저는 당당하고 멋진 예전 모습보다 지금의 당신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박재상 님/ 부산시 사상구 엄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