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는 빨간색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낯선 사람들에게
큰 소리고 '충성'을 외치는 15세 소년 진욱이. 진욱이가 헬멧을 쓰고 있는 건
어려서부터 앓고 있는 간질이 발작할 때마다 심하게 넘어지곤 해 머리를 보호
하기 위해서다. 무겁기도 하고 날씨가 더울 때는 많이 불편할 텐데 진욱이는
하루 종일 불평 없이 잘 참고 있다.
진욱이가 우리 정신병동에 입원한 지 벌써 4년. 입원 당시에는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아버지 키만큼 자랐다. 하지만 정신연령은 여전히
네 다섯 살. 그래서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내며 아무나 때리곤 해 영문 모르는
몇몇 환자들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다.
지난 5월, 병동에서 어버이날 행사를 했는데, 환자들이 부른(어버이 노래)를
듣고 진욱이는 아빠가 면회 오면 자기도 불러 주겠다며 간호사에게 가사를
적어 달라 했다. 하루 종일 중얼거리며 노래를 연습한 지 2주째, 오늘 아빠가
진욱이를 퇴원시키러 오셨다. 진욱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아빠 어깨에 손을 얹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정확하게 끝까지 다 부르고 아빠를 꼭 끌어안자 아빠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곁에서 지켜보던 환자와 직원도 코끝이 찡한지 하나 둘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눈물을 보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눈물은 처음이었다. 진욱이와
아빠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행복한 아빠이리라.
어깨동무하고 퇴원하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며 행복을 빌었다.
김호숙 님/ 강원도 동해시 평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