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 통에 복해장국집이 하나 있다.
복요리집이라는 게 일식집같이 고급스럽고 널따란 홀을 가진 전문식당이 대부분인데
이 곳은 탁자 네 개가 전부인 아주 서민적인 곳이다.
일금 오천 원인 일인분을 시키더라도 사인용짜리 누런 양은냄비에 가득 국물 넉넉히 해서 끓여 준다.
끓으면 콩나물은 건져 내어 따로 무쳐 준다.
작가들 직업병 가운데 으뜸이 '과음' 이니 늘 해장국을 필요로 했고 또 바닷가 출신이라
어렸을 적부터 입맛에 맞아 적잖이 이 집을 즐겨 찾는다. 해장으로 아주 그만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일 생겼다고 훌쩍 어디 가 버리면 셔터 내린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선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주머니는 전남 강진 출생으로 경북 어디 소도시로 시집을 갔다가 늦게 홀로 되었다.
큰딸이 대학을 이쪽으로 와서 돈벌이 겸 따라오기는 했는데 자본금이 부족해서
세가 싼 시장 통에 식당을 낸 것이다.
내가 문 열고 들어가면 다락에 누워 있다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곤 한다.
큼직한 체구에 서글서글하니 잘 웃는 아주머니는 약간 덜렁대는 면도 있다.
복어에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이 있다.
이 독은 독성이 아주 강한 거라서 전문가가 손질해야 한다.
어렸을 때 복어 독에 중독되어 세상을 버린 사람도 봤다.
나도 한번은 미세하게나마 중독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마취를 당한 듯 졸음이 쏟아져서 고생을 했다.
물론 아주머니는 시험 치고 자격증을 땄다.
나이 들어 팔자에도 없는 공부를 하느라 아주 곤욕을 보았단다.
하지만 막 개업하여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때 나는 걱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손이 컸는데 손 큰 사람들은 흔히 정교한 손맛이 떨어지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칠 것 없이 쓱쓱 밀어 대는 칼질을 보며 제독(霽)이 제대로 되었을까 싶었다.
아주머니는 답했다. "자격증을 따기는 했지만 그래도 겁이 나잖아요.
그래서 두 달 동안 복국을 백 그릇을 끓였죠. 그것을 애들과 내가 다 먹었어요.
백 그릇이 모두 탈이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개업을 했죠."
나는 감탄했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시험 통과와 자격증이 어디에 또 있을까.
자신과 아이들이 먼저 먹어 보고 나서야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
신뢰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 아닌가.
소설가 한창훈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