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저를 부릅니다.
목욕하게 보일러를 틀어 달라 하십니다.
컴퓨터 오락을 하며 모른 척하다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처량한 눈빛이 싫어
투덜대며 보일러를 틉니다.
할머니는 보일러를 켤 줄도 끌줄도 모르십니다.
시작장애인인 할머니에게 보일러 켜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할머니는 어릴 적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의 얼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 손자 얼굴도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어떻게 생겼는지 보자며 내 얼굴 이곳저곳을 쓰다듬곤 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잠든 뒤에야 내 방에 살그머니 들어와 내 얼굴을 가만가만 만져 보십니다.
아침이 되면 부모님, 오빠, 저 모두 학교로 회사로 나갑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라디오를 듣고 계신데, 재밌는 내용은 기억해 두었다
내가 오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들려주십니다.
할머니는 젓가락 대신 손으로 반찬을 집어 드십니다.
반찬을 자꾸 떨어뜨리는 젓가락보다 편하신 게지요.
하지만 나는 할머니 손에 젓가락을 쥐어 드립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옮기다 떨어지면 제가 할머니 밥 위에 얼른 반찬을 올려놓습니다.
할머니는 그 반찬 입에 넣으시고 이번에는 되었다. 생각하실까요?
할머니 손에 젓가락이 있는 것만 봐도 흐뭇합니다.
할머니가 목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 보니 욕실 불이 꺼져 있습니다.
나는 얼른 욕실 불을 켭니다. 할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이렇게 오래 살아 뭐하냐고 하십니다.
그럼 나는 딱 아흔까지만 사시라고 합니다.
그 말이 싫지 않으신지 할머니는 함박 웃으십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햄버거와 냉면을 사 갈까 합니다.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라며 꾸지람하시면서도 환하게 웃는 할머니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김상미 님/ 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