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에 제법 봄기운이 묻어나는 지난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도 되련만
배고프다며 빨리 밥 달라는 딸아이 성화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봄맞이 청소를 시작했다. 베란다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것들 치우다 보니
쓰레기 봉투가 필요해 딸아이에게 2천 원을 쥐어 주며 슈퍼에 가서 봉투를 사 오라고 시켰다.
딸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명랑하게 대답하더니 옷장 속을 뒤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옷을 입겠단다. '여시 같은 것이 이번에는 무슨 옷을 입으려나?'
생각하며 청소를 하는데 다녀오겠다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10분, 20분이 지나고 버릴 물건들은 쌓여 가는데 아이는 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나와 보니 거실 바닥에 돈이 그대로 있고 아이 신발도 그대로 있었다.
돈을 두고 갔다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오지도 않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혹시 예쁜 우리 딸 누가 납치해 간 것은 아닐까? 심장이 뛰었다.
아들아이를 시켜 아파트 안을 뒤져 보라고 했다.
10여 분 뒤 나타난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아무리 봄기운이 난다지만 민소매 옷에 짧은 치마를 입고 오동통한 맨다리에
여름 샌들까지 신은 모습이었다. 그 차림으로 슈퍼에 갔다가 돈을 가져가지 않은 줄
알았다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와야 하건만, 봄바람 난 아이는 놀이터로 달아나
그네를 즐겼다는 게 아닌가! 봄바람과 그네뛰기라, 천상 여자여서 멋 부리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게도 봄바람이 좋았을까?
그 화려한 외출 덕분에 지금 딸아이는 감기로 열이 끓고 있다.
오영란 님/ 경남 거창군 상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