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한참 일하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발신자에 '아버지' 라고 찍혀 있어 "왜요?" 하고 퉁명스레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한 사람은 응급실 의사였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지금 바로 수술을 해야 하니 어서 와서
수술동의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수술 뒤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살아생전 사람을 대할 때는 수직이 아닌 수평의 마음으로 입장을 바꿔 대하라고
가르치신 아버지였지만 가장으로서는 썩 훌륭하지 못하셨다.
'아비가 능력이 없어 너희들 행복하게 못해 주어 미안하다' 면서도 늘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셨고, 난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나는 수술비와 병원비 때문에 힘들게 모은 돈을
모두 쏟아 부었고 빚까지 지고 말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 버렸다.
그렇게 1년여를 정신없이 지내면서 겨우 빚을 다 갚아 갈 무렵 예비군 훈련통지서가 날아왔다.
훈련 전날 창고에서 군화를 찾는데, 내가 놓아두었던 그 자리에 없어 한참 걸렸다.
군화는 검은 비닐봉지에 싸여 구석에 놓여 있었다.
먼지가 뿌옇게 앉은 비닐봉지를 벗기고 정성스레 싼 종이를 벗기니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깨끗한 군화가 있었다.
지난해 훈련 갔다 온 뒤 휙 던져 놓은 것을 아버지가 다음 훈련 때 깨끗한 군화를
신고 가라고 닦아 놓으신 것이었다.
아들을 위해 그 사소한 군화 한 켤레를 정성스럽게 닦으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 저 이제 철드나 봐요. 아버지의 사랑을 지금에서야 느낍니다.
아버지께 못한 것 두 배 세 배로 어머니께 잘할께요."
김일규 님/ 서울 마포구 상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