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하셨고, 오남매의 맏이라 그랬는지
남동생이나 당신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 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웬일이유? 늘 내 밥부터 퍼 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늙은 내가 먼저 죽어야 안 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항상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어머니는 예순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 가운데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남편 밥을 먼저 뜨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홀애비 삼 년에 이가 서 말이고 과부 삼 년에 깨가 서 말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뒷바라지해 주는 아내 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는 달랑 딸 하나인데 딸아이가 늙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 것이다.
남편을 먼저 보낸 뒤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까지 보살펴 주고 뒤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 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혹 알게 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대 우리 두 사람, 늙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기남 님/ 대구시 중구 남산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