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내리던 비가 그친 저녁
아파트 뒤 늙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반가운 까치 울음소리가 나네요
그 울음 소리에 늘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그곳 생각이 납니다.
제가 7살적에 떠난 그 산골 조그만한 동네 어귀에도...
잰걸음으로 온통 헤집고 다니던 그 집 뒤란에도
곧 하얀 감꽃이 달빛 아래 새색시 처럼 고운 얼굴을 붉히겠지요
그곳을 떠나온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추운 겨울날 엄마손을 잡고 산을 세개 넘어 난생 처음 버스를 타고 전주라는 곳으로 오게 된지가...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전 벌써 두아이의 엄마 되었구요
아버지 머리에도 세월의 흔적이 서리처럼 하얗게 내려 앉고
왜 이리 시간의 흐름이 빠른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게 있어요..
산골에서 늘 호롱불만 보고 자라온 제가 처음 이곳에 오던날 저녁 오빠가 전기불을 끄라고 하더라구요
전 아무 생각없이 호롱불을 끄듯이 입에 바람을 잔득 넣어 백열등을 불었는데
아무리 불어도 그 백열등이 꺼지질 않는거예요..옆에서 보고 있던 오빠가 그게 아니야 하면서 손으로 스위치를 돌리더라구요.
오빠 손놀림에 불은 아주 손쉽게 꺼지고 전 한참 오빠와 백열등을 번갈아 쳐다 봤어요 그때 기분이 참 묘하더라요
정말 내가 낯선 세상에 혼자 서 있는듯한 기분 ..
그 산골동네에서 전 엄마손이 아닌 늘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유일한 아이였어요
할머니 가시는곳 어디에나 전 할머니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 다녔죠
지금도 생각나요.. 할머니 손을 잡고 걷던 논두렁..밭일 하시던 할머니 옆 감나무 아래서 엄마를 부르며 울던 조금만 계집애..
해질녁 버스가 들어올때마다
신작로에 나가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일들...그리고 처진어깨로 삽짝문을 밀고 들어오던 기억들
어머니 아버지는 늘 제게 너무 먼곳에 계셨어요
그곳 아이들이 한번도 신지 못한 빨간색 구두를..
그리고 천으로 된 예쁜운동화를 ...고운 새옷을 사다주셨지만..
그 무엇도 엄마 아빠의 따스한 사랑을 대신 할수 없었으니까요..그래서 제겐 유년은 늘 쓸쓸함으로 다가 오나봐요
하지만 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떼어 놓았던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중학교에 들어갈때까지
손수 물을 데워서 제 작은등을 오래오래 씻겨 주는시는거였다는걸 ..
아버지 제가 어렸을적 별명 기억하세요
" 미국 가이내" 였어요.머리카락 색깔이 노랗다고 아버지가 지어주신 별명요
오늘은 예전처럼 아버지께서 제 별명을 부르는 목소리가너무 듣고 싶네요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