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학을 접으면 학 같이 고고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속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즉 종이 학 천 마리를 접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그 것이 곧 사랑의 정표(情表)로 되돌아온다는 재미있는 놀이었다.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주려고, 수업시간에 종이 학을 접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아무튼 서로가 좋아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랑은 종이학을 접듯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들은 종이학 천마리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음과 정성 그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수고한다. 그 종이학을 만든 많은 시간들이 사랑을 다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좋아 할 때 서로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간직하고 싶어하거나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또한 주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게 되면 그것을 평생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선물이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이다.
나를 인정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혹자는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는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랑은 섬기고 서로 돕는 것이라고도 한다. 서로 사랑한다면 어느 것도 좋다. 나는 한가지 더 붙이고 싶다. 사랑은 받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가 주는 것을 잘 받아 주는 것도 사랑이다. 받는다는 의미는 이기적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언가를 받을 줄 아는 여유는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 요즘 사랑은 변질되어가고 있다. 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본질적인 사랑이 변질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요즘 젊은이들의 몇 소수는 내가 주었기 때문에 너도 나에게 주어야한다 라는 식의 사랑을 표현한다.
나의 사춘기 시절에 친구들 중의 몇 명은 조그마한 유리관 속에 담겨있는 종이로 만든 학을 받고는 신이 나서 나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얼마나 화가 나고 질투가 나는지 지나가는 똥개라도 차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똥개는 나타나지 않아 내 마음은 더욱 더 비참해졌다. 그래서 집에서 나 혼자서 그 잘난 종이 학을 접어서 꾸겨버리고, 또 만들어서 찢어버렸다. 아까운 색종이만 낭비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은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나에게도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이 학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예쁜 유리관에 잘 담겨있었다. 나를 그동안 혼자서 짝사랑했던 후배 여학생 이였다. 그녀는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 대신 종이 학을 접어서 나에게 조용히 건네주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녀를 내심 좋아했었다. 나는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아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그날 밤을 꼬박 새었다.
그날 밤하늘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별님들과 달님은 다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잠을 자지 못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친구들은 종이학을 받을 때 대부분 천마리를 받는데 내가 받은 종이학은 천 두 마리였다. 내가 잘못 세었나 하고는 세어보고 또 세어보아도 그 예쁜 유리관속에 있는 종이 학은 천 마리하고 두 마리가 더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두 마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그 종이 학 두 마리에 대해 아름답게 해석을 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그 두 마리의 종이학은 그녀와 나였다라고 해석을 했다. 사실 그녀가 두 마리를 더 만든 의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 종이학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했고 어릴 때의 풋사랑을 살며시 터트려 주었다.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종이 학이 들어 있는 유리관을 열어 밤새 천 두 마리를 세곤 했다. 종이 학은 나의 사춘기 시간을 멈추게 할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나의 눈을 멀게까지 했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고 나의 마음은 어느새 하얀 종이 학이 되어 버렸다. 파란하늘을 보면서 훨훨 날아오르는 종이 학 두 마리는 높게 드높게 손을 잡고 날았다. 오색 빛이 찬란한 하늘은 우리에게 포근한 가슴을 빌려주었다.
슬프게도 서로의 친밀함이 깊어 갔을 무렵 나는 군대로부터 영장을 받게 되었고,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와 그녀는 헤어짐의 아픔을 맛보며 지난날의 종이 학 첫사랑을 그리워했다. 종이학 천두마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각자의 갈 길을 걸어갔고 그 후로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추억이 가득 담긴 종이 학 천 두 마리를 자유롭게 날려보내기로 결정하고 부산 영도다리로 향했다. 밤이라서 그런지 영도다리마저 처량하게 혼자 있었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로등 환하게 위에서 아래로 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의 종이 학 천 두 마리를 바다로 날려버렸다. 그 종이 학들은 자유를 찾은 듯 바다로 떨어져 썰물처럼 밀려가는 파도에 휩쓸려 대양으로 떠나갔다. 나는 오히려 종이학과 그녀를 축복했고 아름다운 추억의 종이 학을 나의 가슴에 심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인생이다. 종이 학은 쑥스러워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사랑의 증거로 사용되는 매개체다. 만약 이런 매개체가 없다면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사랑에 익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종이 학을 주고받는다. 이들도 언젠가는 종이 학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영도다리로 달려갈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추억 속의 종이 학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