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벚꽃이 참 곱습니다.
바람에 날려 하늘하늘 춤을 추듯이 내려오는 꽃잎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운지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 하얀 꽃잎이 옷에 스칠 때마다 얼마나 설레이는 느낌인지.
그 느낌 속에 누군가가 실려옵니다.
꽃잎 하나하나가 스칠 때마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새하얀 얼굴..
웃음꽃이 얼굴 가득 피었던 새색시같던 누군가가.
언제나 같이 있을 것 같던 꽃잎처럼 고왔던 어여쁜 그 친구가..
벚꽃에 실려 제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라고 해........
그때 우린 너무 어렸습니다.
순수하게 웃는 것이 너무 예뻤던 나이였습니다.
친구라는 말도 익히지 못한 그 때 전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났습니다.
약간은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띠며 그 아이가 처음 제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 나하구 놀래?
그때 제가 살았던 곳은 벚꽃이 참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봄이 되면 하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참 아름다웠던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숨박꼭질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몇번이고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하얀 꽃잎으로 밥을 만들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담벼락을 넘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넘어져서 울기도 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잔뜩 묻힌 채 정신없이 먹기도 하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요.
그 때도 정신없이 뛰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철부덕 소리와 함께 넘어져버렸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앞서 가던 그 친구가 뒤를 돌아보더니 눈이 동그래진 채로 뛰어왔습니다.
"괜찮아?
"뭐 이정도 갖구 그러냐.. 이런건 침만 바르면 나아..
어릴 때부터 전 모든 것이 다 침으로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
"괜찮다니까..... 야...... 야. 왜울어....
"......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
"괜찮다니까.. 뭘 너때문이야... 야.. 야....
전 그 때 아픈 줄도 모르고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랑 코랑 새빨개진 채로 걸어왔는데, 얼마나 웃긴 모습이었는지 제가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도 새빨개진 얼굴로 신나게 웃더군요.. 그 날 우린 늦게 까지 놀다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아이는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전 진짜 많이 맞았죠. 그래도 많이 놀았다는 것에 아픈 지도 모르고 헤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했던 하루의 마지막이 찾아왔습니다.
전 그곳을 떠나게 되었으니까요.
아무리 울어도, 떼를 써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 나이에도 한참 그것만을 고민했죠,
제일 좋아하던 과자까지도 먹지 않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가 울어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아니....... 울테니까요... 분명히 그 하얀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어버리겠죠.
아주 작은 일에도 금방 울어버리는 그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전 간다는 말 한마디도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때도 새하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만났던 봄에 그 아이와 헤어졌습니다.
오래전의 일인데도 전 아주 생생히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의 얼굴도.. 말투도. 모습도. 그 예뻤던 웃음까지..
그리고 그때 흩날리던 꽃잎까지...
그래서.... 전 이 곳에서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때의 하얀비는 내리고 있는데....
우리가 놀던 그곳도.. 구멍가게도.. 나무의자도.. 모든게 그대로인데.
왜... 그 아이만 없는 건지...
한참동안이나 전 그곳을 맴돌았습니다.....
혹시 그 아이가 있지 않을까..
이제 알아볼 수 없을만큼 커버린 나를 알아보지를 못해서 부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라는 기대를 가지며.
은형아.......... 은형아......
오늘따라 네 이름을 부르고 싶고..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걸 넌 알고 있을까..
내가 여전히 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넌.....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