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 41분.. 서울로 가는 기차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은빛 강물 위를 여유롭게 날아가는 물새 한 마리..
나에게는 지독하기까지 했던 겨울도 이젠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면바지에 가벼운 T-셔츠 하나 걸치고 나서는 길이건만 열차 안은 후끈거리는 열기로 눈꺼풀을 짓누른다.
작년 4월이었지 아마..
입대를 앞두고 애써 태연한 척, 그렇게 친구들을 대하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먹이고, 역까지 만이라도 제발 같이 가자고 매달리던 어머니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것마저 끝끝내 거절했던 건, 어머니 눈에서 더이상 눈물 만들지 않으려 했던 나의 작은 배려였다.
텅빈 버스에 앉아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내가 그 눈을 보고야 말았으니.. 그리고 난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서럽게 울어야 했다.
모든게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6주간의 신병교육대..
지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 배인 철모를 눌러쓰고 산악 구보를 했고..
너무 급한 나머지 구멍 뚫린 방독면을 잘못 집어들고 가스실에서 견뎌낸 지옥같은 3분간..
생소금 한 줌 억지로 집어 삼키며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나섰던 50km행군..
그래도 가끔씩 받아보는 친구들의 편지.. 쵸코파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시려온다.
덜컹거리는 군용트럭에 실려 하필이면 철원에 배치받게 되었고..
이등병 짝대기 하나는 폭풍이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그저 구조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조각배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말수도 줄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리는 부슬비 초점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힘없이 한숨 지을 때 조용히 다가온 친구가 있으니.. 그가 바로 학진이다.
내가 결정적인 실수로 우리 편이 축구 경기에 졌을 때, 그래도 최고의 플레이어는 나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던 그 친구..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항상 오렌지 쥬스를 사주던 그 친구..
내가 훈련 도중 발가락을 다쳤을 때, 힘내라고 편지 써주던 소중한 내 친구..
난 지금 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일이면 먼저 복귀하게 될 학진이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고마웠다는 어색한 말보다 먼저 장난을 칠테지 아마..
나보다 한 살 많다고 밖에서는 형이라 불러달라는 학진이..
어림없는 소리다. 우린 친구일 수 밖에 없다.
오늘 밤은 이 친구와 소주 한 잔에 추억을 담아 삼키고 싶다.
"고맙다, 친구야.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