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시절,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덩그란이 한반도만을 그려낸 지도였다. 각각의 지명들이 흩뿌려진 물방울처럼 새겨져 있는 지도도 있었고 울긋불긋 굴곡들을 표시해서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인지를 나타낸 지도도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지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지금에 와서 얘기하면 지나간 일들에 대한 웃음거리로 넘길 일이었지만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까지도 나의 이름 석자를 쓰지 못했었고 숫자개념이 없었다고한다. 유치원을 다니지도 않았기때문이라며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긴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왠만한 영어단어쯤은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에 비하면 그 정도가 심한 편이라하겠다.
나는 줄곧 꼴찌 근처에서 놀았다.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꼬마였으니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하지만 성적과는 무관하게 나는 순진했었고 참신했으며 사고의 발상이 기상천외했었다. 당연한 논리이다. 전혀 때묻지 않은 백색의 눈과 같은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나에게 한반도만이 덜렁 그려져있는 지도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줄로만 착각하게끔 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나는 줄곧 한반도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곤했다. 그리고 남들이 떠들어대는 미국이나 일본은 먼 태양계 저편에 있는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러한 초등학교시절 나에게 커다란 고민이 생긴것이다.
그러니깐 한반도 끝자락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가령, 부산, 마산, 목포, 인천, 강릉, 군산, 신의주등등등. 즉, 지금의 논리로 말한다면 바닷가와 인접해있는 곳들에서 사는 사람들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고 철없으며 들떨어진 생각이었다. 이유인 즉, 지도에는 바다가 그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한반도만이 덩그랑이 그려져있는 지도의 모든 가장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그 곳이 낭떠러지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믿어의심치않았던 것이다. 흰 종이위에 놓여진 한반도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했던 교과서속의 지도는 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그 지도 끝자락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안절부절 가슴조이며 살아갈까?. 하루하루 불안해하며 살아가야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잠을 못이룬적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거기에 산다면 이라는 가정도 하면서말이다.
나의 바보같은 생각과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하루는 횡단보도를 건널때쯤이었다. 어떨때는 파란불이 빨리 켜지고 어떨때는 파란불이 늦게 켜지는 것에 대하여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후로 줄곧 횡단보도에 서게 되면 그 생각만을 했었다. 혹시 누군가가 빨간불과 파란불을 바꿔치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을 잡기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기도 하였다. 결국 그 사람을 잡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빨간불과 파란불을 바꿔치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철부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횡단보도앞에 있는 보도블럭을 많은 사람들이 밞게 되면 그 만큼 빨리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뀐다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에게는 걱정이 생겼다. 횡단보도앞에 사람들이 많을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을때가 문제였다. 사람들이 많이 올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생각이 어린 꼬마를 초조하게 했던것이다. 철부지 내가 사람들이 모일때까지 기다릴리가 없었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좌우로 뛰어다녔던 것이다. 많이많이 밟아서 지금 횡단보도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신호체계를 속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속아넘어간 신호등을 비웃으며 나는 털레털레 흰색 양탄자가 깔린 횡단보도를 유유히 건너곤 했다.
우리나라 도로의 신호체계를 깨닫기 전까지,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받기전까지 나는 그렇게 횡단보도앞에서 마치 오줌마려운 강아지마냥 빨리빨리 파란불로 바뀌어라라는 주문을 외우며 뛰어다녔다. 지금도 가끔씩 횡단보도 앞에 서면 그때 기억이 난다. 파란불로 바뀐 신호등을 보며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설레인다.
그땐 그랬다. 바보처럼.
하지만 커버린 지금, 나에게 이쁜 그림을 그려주는 추억이 되었다. 오늘은 횡단보도앞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주문을 외우며 이리저리 뛰어다녀볼까한다. 아마도 주변사람들이 걱정스레 쳐다볼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