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마을안으로 들어갈라치면 군인들의 신분조사를 받아야하는 곳,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은 군인들의 눈에 익은터라 별문제없이 들락날락하지만 외지인들의 경우는 주민등록증을 건네고 무전으로 뭐라뭐라 중얼중얼거린후에야 들어갈 수 있는 곳. 그곳에 내가 아는 아이(지금은 청년이 되었을)가 있었다. 이경준. 그 아이와의 인연은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
훌쭉한 키에 미남형으로 생긴 갸름한 얼굴을 가진 경준이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었고 내가 근무하던 강화군 모학원에 다니는 아이였다. 여자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같은 또래의 친구들뿐만아니라 중학교 1학년, 2학년 여학생들까지도 그 녀석에게 선물을 갖다주고 눈웃음을 치곤했다. 짐작컨대 수업이 끝난후에도 종종 만남을 갖는 것 같았다.
공부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성적은 반에서 중간보다도 약간더 뒤에 있었으며 운동도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 항상 멋부리는 것을 좋아해서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다녔으며 승마바지(그 당시 무척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됨), 기지바지를 즐겨입었고 청바지나 반바지을 입은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해서 강의시간에 떠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옆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거나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댄다거나하는 장난은 줄곧 했지만 말이다. 쉬는시간이 되면 다른반에서 몰려오는 여학생들의 소곤대는 환상적인 대상이 되었으며 언제나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갖고 다니곤 했다.
그녀석이 내 기억속에서 남아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쓸때쯤이었다.
그당시 나는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중이었지만 아이들의 진로상담도 병행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커다란 결점만 없다면 인문계 진학을 조장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의 조언에 고개숙여 감사해하고 원서를 작성하였다. 하지만 한 아이만은 반대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장장 4시간여동안의 대화에서도 나와 경준이는 해답을 찾지못했다. 나는 여느 학생에게 그랬듯이 인문계진학을 권유했고 그 녀석은 공업계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 녀석의 이유는 이러했다. 사촌형이 있는데 서울 명문대를 졸업했단다. 하지만 반반한 직장하나 잡지 못하고 빈둥빈둥 집에 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사촌형의 모습을 보면서 그 녀석은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뿐더러 불필요한 학업의 연장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공업계학교에 진학해서 기술을 배워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 그 녀석이 공업계에 진학하겠다는 논리였다.
대학생이던 나의 논리는 약간 달랐다. 대학은 취직만을 위한 곳이 아니며 남자로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화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한다는 것이 나의 논리였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의 이러한 말에 고개만 숙이고 조용히 앉아있을뿐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녀석과 같은 불은면에 사는 제자가 나를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기자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던 그 여제자에게 난 뜬금없이 경준이의 소식을 물었다. 설레이며 바라보는 여제자의 입술을 통해 경준이의 소식이 흘러나왔으나 그 내용인 즉 뜻밖이었다.
경준이는 그 해 공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난후 약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 제대후 열심히 공부해서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입학을 했다고 한다. 나는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경준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었다.
경준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그 녀석의 논리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가 돼서는 그러한 사회의 불평등과 매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흐뜨러지지않고 마른바닥을 박차고 일어선 경준이게 나는 내심 고마웠다.
만약 그 당시 경준이에게 보여진 사촌형의 모습이 늠름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형의 모습이었다면 경준이는 또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며 나태하고 흐지부지한 모습을 지탄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인 반항으로 치닫는다면.....고개 숙여 생각해본다.
그리고 경준이게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녀석 연락이 없다. 아마도 학창시절 흘러갔던 수 많은 선생님들중에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경준이가 사회와 싸워서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워줬으니깐....
p.s)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요. 문사에 들어와 도둑고양이처럼 님들의 글만 훔쳐보고 사라지곤 했었습니다. 저의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면 믿어주실런지요?...이제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저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있답니다. 너무 오래간만에 글을 써서일까요?. 처음 대하는 원고지에 낯설은 연필을 끄적거리는 설레임과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