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쑥쓰러운 모양새를 살포시 내보이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것만같은 꽃몽우리들이 하나 둘 서둘러 봄을 준비하고 있다.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없는 꽃들과 풀잎들에게서도 그리고 아주 작은 자연의 숨소리에서도 봄의 자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런 날엔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싶다.
그리 따갑지 않은 햇살을 온 몸으로 화답하며 약간은 차가운 바람에 얼굴을 부벼대며 이것이 봄이구나하며 흙냄새 풍기는 대지속으로 뒹굴고 싶다. 삭막한 고층빌딩과 시끄러운 전자음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라는 자동차에서 뿜어져나오는 온갖 매연들, 집에 들어와 하얀 속옷이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린 것을 바라보며 찡그렸던 일들, 북적대는 인파들속에서 피어오르는 역겨운 시기와 질투의 냄새들에게서 벗어나 숲의 향기와 같은 잔잔함과 고요함을 맘껏 느끼고 싶다.
아무도 걷지 않은 산 길이면 좋겠다. 비록 산 길이 아니더라도 길 양쪽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저 멀리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도록 사방이 뻥 뚫린 길이라면 좋겠다. 가는 길에 조그마한 시냇가가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어여쁜 시냇가가 아니더라도 오래된 정취가 느껴지고 어수선한 느낌에서도 정돈된 듯한 묘한 흥분을 느낄 수 있는 도랑이어도 좋겠다.
간간이 먼지를 풍기며 지나가는 버스가 있다면 고된 삶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손짓하고 싶다. 이름도 모르는 푸른 풀잎에서 또 다른 풀잎으로 뛰어다니는 방아깨비를 만난다면 그 흥분이 고조에 달할 것이다. 노랑나비, 희나비가 너울거리는 한 폭의 수채화를 구경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이상의 기쁨도 없을 것이다.
날씨가 따뜻하고 그리 차갑지 않은 바람이 봄을 재촉하는 이런 날에는 아무 상념없이 자연의 한 복판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걷고 싶다. 걷다 지쳐 목이 마르면 잠시 풀밭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며 꼴까닥꼴까닥 침도 삼켜보고 어릴적 재잘대던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둘 떠올려보며 행복한 미소를 세상에게 던져주고 싶다.
이런날엔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싶다.
p.s) 지금 제 옆에는 시끄럽게 돌아가는 잉크젯 도트 프린터가 있고 북적대는 손님들의 제각각 세상사는 이야기로 어수선합니다. 이것도 사람냄새나는 삶의 한 풍경이겠지만 오늘은 왠지 한적한 곳에서 걷고만 싶은 따스한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