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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는 자기가 노트에 쓴 글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세상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 말을 하신 이유는 내가 한 생명을 담보로 살아난 생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계곡으로 놀러 갔다고 한다. 그 때 갑자기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 내가 계곡에 빠졌을 때 한 젊은 청년이 나를 구해 주고는 물살에 휩쓸려 가 죽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여덟 살 전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 때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살려 준 그 남자한테 고마움을 느끼기는 커녕 그 남자를 기억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다만 간간이 뉴스에서 어떤 사람이 한 생명을 구하고 죽었다고 하면 그 때서야 아버지가 한 말 속의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기억할 뿐이다.]
사장실 문을 열고 선화가 들어왔다. 준수는 자신이 보던 노트를 재빨리 덮고는 책상 서랍에 넣었다.
“설마 오늘 약속 잊은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준수는 오늘 선화와 함께 선화의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와 차를 세워 둔 주차장으로 갔다. 준수가 운전석에, 선화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준수는 시동을 걸었다.
“나 결혼하면 의사 그만 둘 거야. 네 어머님도 그걸 바라니까.”
“우리 어머님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잖아?”
“나도 그만 둘 생각이었어. 그러니까 너 앞으로 돈 많이 벌어야 해. 쓸데없이 돈도 안 되는 소설이나 쓰려 하지 말고.”
“너 꼭 돈 때문에 나랑 결혼하는 것 같다.”
“빙고.”
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선화를 보았다. 선화의 말이 농담이라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결혼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서질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회사를 물려받은 어머니가 자신을 선화와 결혼시키려는 이유는 선화가 국회의원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든든한 후원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준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선화를 정말 사랑하느냐는 것이었다. 준수는 그 대답에는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끼리 만나다 보니 알게 된 것이었고 서로 친하게 지내다 보니 부모님들 사이에서 결혼 얘기까지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준수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자신이 선화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준수는 요즘 들어 이대로 정말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서 준수는 차를 세웠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응?”
준수는 놀라서 선화를 보았다.
“하지만 날 싫어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말은 준수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뭘 그렇게 고민해? 결혼이 사랑만으로 되는 것도 아닌데.”
준수는 선화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고민을 해 봤자 아무 것도 얻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결정된 일을 깨트린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았다. 결국 선화와 결혼하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파란불이 들어오자 준수는 천천히 악셀레이터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