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5부. 조각하는 남자.
숲에서 빠져나오고 한참 후에 나는 뒤돌아서 숲을 바라보았는데,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던 숲이 다시 보니 매우 정겨웠으며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낌, 느낌이 그랬다. 숲을 빠져나온 평야에도 나무는 존재하였는데, 이번에야 말로 나무가 땅에 심어져 있었다. 이것들은 매우 단단해 보였으며, 각각의 모양은 매우 달랐으나 그럴만 하였고, 나에게 매우 익숙하였다. 그 중에는 좀 전에 지나쳐온 숲에 있던 나무와 유사한 나무도 있었으나 같지는 않았으며, 이 나무들은 굉장히 긴 시간 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찌는 듯한 태양 빛에서 이제서야 나는 마음 먹은대로 쉴 수 있었다. 나무 그늘 밑에 앉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진짜 나무들은 모든 부분에서 만족스러웠으나 익숙은 하되 친근함이 없었다. 동떨어져 있는 기분 이였다.
그렇게 쉬다 걸어가다, 쉬다 걸어가다를 반복하던 내 눈에 어김없이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조각하는 듯하였다. 망치와 쇠를 들고서 자신의 몸통만한 돌을 깍아 내고 있었는데, 그는 망치로 쇠를 쳐 돌을 두어번 깍아내고는 일어서서 그 주위를 걸으며 유심히 살펴보고 다시 망치와 쇠로 조각을 하고 그리고 다시 조각을 둘러보는 행동을 반복 하였다.
조각하고 있는 사내의 주위에는 여러 개의 조각들이 널 부러져 있었는데, 이전에는 그것이 조각되던 것 이였음을 예측 할 수는 있으나, 어떠한 조각인지는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망치로 두들겨져 박살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없이 그의 곁에서 조각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 보았는데, 그가 조각하는 것은 흉상이었다. 부서진 흉상의 조각으로 미루어 보건데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작업하는 듯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망치로 조각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이내 모양을 갖춰가던 흉상은 박살이 나서 조각조각 주위에 널 부려졌다.
그는 매우 상심한 듯 자리에 일어나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한 듯 내게 고개 돌리어 물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묻고 싶은 질문 이였다.
"저..저는.." 대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사막에서부터 걸어 왔다고? 아니면 샤워하던 것부터? 내가 누구냐라는 질문은 이 상황에서 굉장히 어렵게 다가왔다.
내가 한동안 우물쭈물 하고 있어 그가 답답해 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누군지 크게 상관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맨몸으로 있으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그가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몹시 부끄러웠으며 직접적 고통이 아닌 부차적인 괴로움으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대체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수치스러움을 가르쳐 주었으며, 옷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걸어가더니 옷 한 벌을 가져야 내게 건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옷을 걸치며 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이야기 하였다.
"나에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것이니까요"
"그래도..." 나는 고마움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 옷들은 나무에서 얻어낸 것이라 하였다. 잎을 모으고 가지를 잘게 찢어 망치로 두들긴후, 그것으로 엮었으니 나무에게 고마워하라 하였다.
나는 문득 조각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까 조각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뭘 조각 하시는 건가요?" 나는 그의 굳은살 박힌 손바닥을 보며 물었다.
"완벽함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굳이 완벽함 무엇이 존재 하지는 않겠지만, 그저 완벽하지 않은 부분을 깍아내고 있다고 얘기 하고 싶군요"
"완벽한 무엇을 말입니까"
"완벽한 무엇이라,, 완벽한 존재. 혹은 살아있는 조각." 그는 회상하듯 이야기 하였다.
"살아있는 조각이 존재 합니까?"
그는 꼭 한번 본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어느날 그의 눈앞에 신이 내려와 자신의 흉상을 보여 주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조각은 살아있었고 온기도 있었으며 심지어 말도 하였다는 것이다.
"신.. 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그가 보았다는 신이 매우 궁금하였다.
"글쎄요.. 신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후로 이야기를 이어 갔는데, 신이 보여준 흉상에 반한 나머지 그도 꼭 같은 흉상이 가지고 싶어졌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간청하여 그가 사용하던 망치와 쇠, 그리고 돌을 받게 되었는데, 이미 수백 수천개의 돌을 조각하였지만 단 하나의 완벽한, 살아있는 흉상을 조각해 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멍한 눈으로 눈앞의 평원을 응시하다 말했다.
"굉장히 외롭군요. 이 외로움이 나를 조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망치와 쇠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만 조각하러 가겠노라고 내게 말했다. 나도 마지막으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시간이 지나고 나자,
맨몸으로 모래사막에 누워있던 그때의 아픔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으며, 내 걸음이 매우 익숙하며 바르고 내 시선은 매우 또렷해졌으나. 나는 무언가 흐려져 감을 느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괴로움을 기피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를 걷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