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건 봄 쯤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더 오래전부터 봤을지 모르겠다.
늘 같은 표정, 굳게 다문 입술 들릴듯말듯한 작은 음성,
언제부터인지모르지만,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잡기시작하더니 갑자기 너무 그 감정이 너무 커져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것만 같은 느낌이자주 오기시작했다.
정말 모든것이 아주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 그 남자 -
주영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5시25분 항상 그가 오는 시간이다. 어떻게 미소를 보여야 할지, 어떤 인사말을 건네야할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이렇게 항상 신경쓰고 있다는걸.
시계가 5시20분을 향햐자 주영은 일어나 유니폼을 다시 매만지고, 거울을보며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데스크 위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을울렸다. 휴게실에서 보낸 민경의 문자였다.
' 꼭 말 걸어라!'
오늘을 꼭 성공하리라 다짐을 한 주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문이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늘 깔끔한 정장차림의 그는 오늘 약간 분홍빛이 도는 넥타이를 하고 왔다.
항상 그랬듯, 고개를 살짝숙여 인사를 하고 주영도 인사를받아 약간의 웃음을 보냈다.
"어서오십쇼."
"네.."
주영은 일단 입을 떼고보자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늘 두눈을 쳐다보며 몇초정도 주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그의 시선에 주영은 시선처리가 불안했고, 역시나 오늘도 말한마디 걸지못하는구나 라고 짧게 생각했다.
"저.."
"네?"
"죄송하지만, 이거 제 차에 좀 실어주시겠어요?"
그러고보니, 그의 손에 쇼핑백이 쥐어져 있었다. 큰 부피의 쇼핑백이였다.
"아..네 키주시면 제가 차에 실어드리겠습니다. 차는 어디에 주차 되있으세요?"
"지하 4층 155번 기둥옆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달을 일하면서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낮은 음성이었다. 젠틀한 느낌이다. 행동하나하나가 굉장히 차분하고 침착했다.
주영은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먼저 말을 해준것이, 처음듣는 그의 목소리가, 그의 눈빛이 모두 주영의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그에게 락카 열쇠를 건넸고, 그는 들어갔다.
그리고 주영은 바쁘게 짐을 들고 엘레베이터로 향했다.그는 백화점에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엘레베이터에서 주영은 그가 무엇을 샀는지 궁금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봤지만, 포장된 상자때문에 알수가 없었다.
주영은 백화점 내의 문화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영이일하는 문화센터안에는 휘트니스 클럽이 있는데, 주영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5달정도 그를 보았고, 그가 주영이 관리하는 고객으로 바뀌었을때부터 주영은 그를 좋아하게되었다. 아마도 더 전부터 그를 몰래 좋아했던것같다. 그렇게 나머지 5달내내 그에 빠져버렸다.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러왔고, 가끔 하루정도를 보이지않는게 전부였으니까.
표정도 매일 같았고, 말이라곤 "네"가 다였다. 잘생기지도 않은 못생기지도 않은 외모였지만 무언가 듬직해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이었다.
사실 주차장에서 그의 차를 거의 매일 보았다. 퇴근을 일찍하는 날이면, 주영의 차 근처에 그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고객이다 보니 그의 이름 나이 그의 집 그의 차 정도는 알수가 있었다.
이름은 김정우 나이는 35세 차는 스포티지. 3179 늘 차는 깨끗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늘 번쩍거렸고깔끔했다.
오늘도 그는 주영의 차 근처에 차를 세워놨다. 항상 그자리다 155번 기둥옆.
주영은 그의 차 근처에 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가까이에 오는건 처음이니까. 그가 타고오는 차라는 이유만으도 충분히 주영의 가슴이 뗠렸다,
조심히 차 문을 열었고, 좋은 향기가 느껴졌다. 차안도 역시 깔끔했다. 뒷 자석에 쇼핑백을 조심히 놓고, 주영은 잠시 그의 차안을 들여다보았다. 슬리퍼 한쌍이 있었고, 체크무늬 쿠션이 놓여저있었다.
그때, 주영에 눈에 들어온것이 곰돌이가 그려진 담요였는데 주영은 그가 아기가 있는 사람임을 직감적으로 알수있었다.
'유부남이였구나."
주영은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짧은 한숨이 나왔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민경에게 처음 그의 대한 마음을 말했을 때,민경의 말이 생각난다.
"그사람 유부남 같던데...그냥 느낌이 그랬어. 결혼한 사람같은 느낌,"
주영은 아닌것같다며 말했지만, 오늘 확실히 그가 유부남임을 확신했다.
주영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왔고, 민경이 교대를 위해 나와있었다.
"말걸었어?"
민경이 히죽히죽웃으며 주영에게 물었다.
"아.........야...........어쩌냐............."
"왜?못했어?"
"아니...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주긴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유부남인것같아...."
민경은 눈썹을 찡그리며 비웃듯 웃어보였다.
"거봐라...내가 결혼한것같다고 했지?"
"그런데...결혼반지같은건 못봤는데..."
"결혼반지를 꼭해야 유부남인가?그런데 유부남인거 어떻게 알았어?"
"짐을 좀 실어달라길래 차에 갔다가. 애기 담요를 봤어. 남자가 무릎에 그런 담요를 덮고 운전하진 않을꺼아냐..."
"그냥 뭐 차에 있는 담요아닐까?"
"아니...확실히 애기덮어줄 때, 쓰는 담요였어...곰돌이가 막 그려지고...뭐 그런..."
"잘해보긴 다 글렀다~~~"
잘해본다기 보다는 그저 그를 좋아하는것만으로도 주영에겐 행복했는데, 막상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주영은 허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민경과 교대 후,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주영은 너무 속이상한 느낌에 한숨만 내뱉었다.
차에 오른 주영은 한참동안 그의 차를 바라보다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안녕이다. 유부남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