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부. 걷는남자
흐으읍.. 호흡을 들이쉴 때 마다 산소와 함께 들어오는 모래가 입안에서부터 목구멍 넘어 까지 텁텁하게 한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목구멍부터 식도, 폐, 위에 이르기까지 전부 모래로 가득 찰 것만 같다. 게다가 분명히 해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인데 어디선가 쏟아지는 이 빛은 벌거벗은 내 피부에 강렬히 와 닿아 그로인해 몽롱한 가운데서도 고통만은 날카롭게 인지되도록 하여준다. 심지어 몸을 안정적으로 유지 하며 걸음을 옮기는것 조차 발목까지 빠져버리는 이 모래위에서는 그리 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 호흡과 발걸음은 무의식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에 반사적으로 따르는 고통도 그러하다. 기억이 나는 마지막 순간은 귓가의 물소리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사막위에 덩그러니 내던져져 있었다. 여유있게 인과관계라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이 사막의 건조함, 뜨거움이 그럴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어차피 방향을 알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발자국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이 황량한 사막위에서 계속해서 쓰러질듯 아슬아슬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맨몸이라는 사실은 처음엔 당혹스러움 이었으나 지금은 맨몸이라는 그 사실로 인해 겪어야 하는 직접적 고통 때문에 무엇이라도 나를 감싸줄 것이 필요하다. 즉, 지금의 상황을 침착히 고려해보기에는 지금당장의 고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나 발걸음을 옮겼을까 발목까지 빠지던 사막의 모래는 그 깊이가 점점 얕아 지더니, 점차 단단한 흙으로 이루어진 평지가 나왔다. 훨씬 더 발걸음을 옮기기가 편해지자 나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지금의 상황을 하나, 둘 생각해 보기로 한다. 문제의 우선 고려순위는 이곳에 어떻게 왔느냐는 두 번째 문제이고 계속해서 걸어야 할지 멈출지를 판단하는 것이 먼저였으나, 이것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어 일단은 다시 걸으며 다음 순위의 질문를 한단계 올려본다. 걸음을 옮기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히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모래사막이 사라졌듯이 더 걷다보면 이 강렬한 태양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만이 남았다. 아까보다 걷는것도 조금 수월해져서 인지 점점 주의의 전경이 눈에 자세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짙은 갈색의 흙바닥 위에는 잡초조차도 보이지 않아 마치 벽지 같은 바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같은 모양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대지위에는 아무것도 올라와있지 않아서 말 그대로 땅, 바닥, 흙만이 존재하며 그들 각각이 가진 단어의 의미를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계속 걷고 있던중 나는 나의 시야에서 어떠한 실루엣들을 발견했다. 얼핏 보기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인체로 머리를 계속 위 아래로 들썩이는 사람, 그리고 그의 옆에는 허공을 향해 뻗은 계단이 보였다. 계단의 맨 위에는 무언가 큰 상자가 하나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듯 하였으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양의 상자인지는 아직까지는 예측만이 가능할 뿐, 확실히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 색다른 자극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옮겼으며, 그와 나의 거리가 일정 수준까지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나는 그가 무언가를 열심히 핥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남자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고 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 돌덩어리 하나를 열심히 핥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의 곁에 오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열심히 핥는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나는 그가 핥고 있는 돌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내 주먹크기마한 그 돌은 위쪽으로는 두 개의 둥근 언덕모양을 하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갈수록 뾰족한 모양의 돌덩어리였다. 그런데 돌의 한가운데 부분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인듯한 상처가 있었고, 남자는 그곳을 혀로 끊임없이 핥아대고 있었다. 좀 더 유심히 지켜보니 그 상처에는 계속해서 붉은 핏물 자국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핏물을 계속해서 혀로 닦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지금 뭐하시는 중이세요?" 나는 물었다.
남자는 주춤하며 핥는것을 멈추고, 대답하였다. (물론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핥는중이오"
"무엇을?" 나는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내 상처를 핥고 있소"
무어라 다시 질문하기에는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나는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기로 한다.
"저.. 혹시 계단위에 있는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치유.. 치유가.. 있다고도 하고 진실 있다고도 하고.. 허나 나는 잘..."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무섭게 다시 돌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내가 계단을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을 만큼 계단에 다가서자 비로소 나는 계단의 모양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은 한 층계마다 뾰족하고 긴 바늘이 촘촘이 박혀 있었는데, 도저히 계단의 맨 위까지는(사실 한 계단조차도) 올라갈 수가 없어 보였다. 저 남자가 올라가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였다. 하지만 첫 번째 계단에 보이는 핏자국을 보고, 나는 누군가가 (저기 저 남자이거나 혹은 다른 그 누군가 일지도) 몇 번의 시도를 하였음을 추측해보았다.
나는 다시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는 그 후로 몇 번이나 되는 나의 물음에는 대답 없이 '상처'만 혀로 핥아대고 있었다. 그곳에 가만히 서 있자니 이내 핏내가 코를 찌르기 시작하였고, 결국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그를 등지며 걷기 시작하고선 그후로 몇 번이나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으나, 나는 앞쪽만을 바라보고 걸었다. 사실 고개 돌려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시선에서 조차 핏내가 느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분노조차도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발걸음을 바삐 재촉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무것도 없던 흙바닥에 하나 둘 작은 잡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막의 모래보다는 발걸음이 훨씬 편했었지만 그래도 딱딱한 흙바닥에서 걸음이 편하기만 한것은 아니였고 너무 황량했던 바닥의 풀포기 들은 더욱더 나의 발걸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 순간 내 발바닥에 와닿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