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부. 번개를 막는 사내.
강렬한 빛 속에서 걷는 일이란 정말 곤욕스러웠다. 어디서 흘러오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강렬함 때문에 한껏 예민해진 피부는 내 팔꿈치가 옆구리라도 스칠때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는데, 덕분에 나는 한참이나 양팔과 양다리를 벌려서 스모선수가 걷듯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모든 고통은 현재가 가장 고통스럽다.' 라고 내 절친한 친구 브라운이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하긴, 지나간 아픔이란 흉터 이외에는 증명 할 길이 없으니까. 이것만 지나갔으면, 이것만 지나갔으면.. 이라고 계속 계속 중얼거렸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눈에 하나 둘씩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나는 정신이 번뜩 들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나무가 있다는 것은 곧 그늘이 있다는 것이니까. 한 그루, 두 그루 나무의 숫자가 늘어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 나무들은 숲을 이루었다. 나무의 크기는 10여 미터정도가 되어 보였으며 그 곧기가 대나무와도 같았고 나무의 꼭대기에 있는 큰 잎으로 보아 활엽수의 한 종류인 것 같았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런 나무들이 원하는 만큼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시원하다. 살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내 앞뒤 좌우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서는 처음부터 내가 걷고 있던 사막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정신없이 숲속으로 들어와 버렸나, 그렇게 보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내가 얼마나 깊숙이 숲으로 들어왔는지를 무엇으로 비교 할 것이며 또 비교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서, 그만 두었다. 한껏 예민해져있던 피부가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숲속을 좀 더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자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듯이 곧은 나무 몸통과, 길게 뻗은 혓바닥 마냥 늘어진 잎의 모양, 심지어 잎의 개수마저 똑같은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땅속에 뿌리내리고 서있었다. 나는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선 군인들 틈에 서있는 듯한 착시 현상과 함께 속이 울렁거렸다. 앞뒤좌우로 체스 말 같은 나무들이 서있는 이곳에서 나는 방향감각을 잃어 버린 터라,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도 잃게 되어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 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 순간.
따-악, 따-악, 따-악, 쾅, 쾅, 쾅,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움찔 놀라면서도 크레테섬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자신이 풀어놓은 실타래를 찾은 마냥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리기 시작했을까. 내 두눈에 누군가 움막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미친듯이 그를 향해 뛰었다.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무어라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양손을 좌우로 크게 휘저으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정신없이 뛰고 있던 내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피해!" 라는 고함 소리에
나는 뛰던 방향에서 벗어나야함을 직감하고 옆으로 굴렀다.
곧이어, 번쩍하더니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번개가 떨어져 땅이 움푹 파이고 말았다.
나는 쓰러진채로 순간 멍해져 있었고 주위의 나무들이 일제히 그 굉음에 박수라도 보내듯이 나뭇잎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서로 부벼대며 내는 소리가 내게는 마치 박수소리처럼 들렸다.
"괜찮으세요?" 움막을 짓던 사내였다.
"저게,, 저게 뭡니까"
그는 숨을 헐떡이며 넉을 놓고 있는 나를 일단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이 짓고 있던 움막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뭐가 어떻게 된것인지도 알지 못한채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 그저 두려운 가운데 그의 목소리 의지 할만 하였기에 그가 이끄는데로 움막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멀리서 보기에는 움막이라고 생각 하였지만, 실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대충 잘라놓은 나무들을 서로 기대놓고 그 위에 나뭇잎을 덮어놓은 일종의 텐트처럼 보였다. 그는 이 움막이 아직 단단하게 완성되지는 않았고 안에 기둥까지 세우게 되면 번개에도 끄떡없노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저것은 '벌'입니다"
"벌이라니요, 무슨 벌을 말하는...."
그는 그 후로 흔들리던 나무들이 그 소리를 그치고, 빠르게 뛰던 내고동이 진정이 되고 오래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너무나 길어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처음부분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이나 길었다.
하지만, 간추려 보자면 번개는 그가 나무에 도끼를 처음 내리치던 순간에 시작되었고, 그는 번개에서 잠시라도 안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움막을 짓노라고 말해주었다. 지어놓은 움막은 갑자기 내려치는 번개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지만, 그래도 움막 속에 있는 그는 무사하기 때문에 움막이 박살나면 다시 도끼를 들어 나무를 패서 움막을 짓고 있노라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내게 물었다.
"번개에 맞으면 아마 죽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번개 생각만 하여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나무를 쓰러뜨렸으며, 이 나무들은 도대체 무엇이 길래 번개를 부르느냐는 둥의 많은 질문을 하였지만, 그는 이제 곧 번개가 칠 것이라며 자기를 따라 나오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를 따라 움막 밖으로 나갔더니 내가 걸어오던 길 반대편으로 나무들이 잘려나가 있는 길이 보였는데 (나무 들 사이를 지나는 것이 더 이상 내게는 길로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이 내게는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보였다.
"이 길로 가면 됩니다"
나는 그 후로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으나, 언제 다시 칠지 모르는 번개가 겁났기 때문에 '그 길' 위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어서 이 숲에서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