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3부. 공중에 떠있는 돌.
잔디 위를 걷는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어느 순간부터 흙바닥 위에는 빈틈없이 잔디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 내 발밑에는 포근한 잔디만이 풍성하게 펼쳐져 있다. 행복의 시작은 고통의 끝이라고 했던가. 단순하게도 하나의 고통에서 벗어나니 하나의 행복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상처를 핥는 남자는 잔뒤가 흙을 덮는 것처럼 이내 내 기억에서 흐릿하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곳에서의 발걸음도 꽤나 괜찮구나' 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람은 참으로 단순하다.' 라고 나는 지금 생각한다. 나는 학사경고를 받고 굉장히 우울해 있다가도 친구가 사준 맥주한잔에 헤헤 거리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 내가 이야기 하는것이 논리상 수많은 오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단순함의 극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나의 심리상태가 정상일수도 있다라는 예를 찾는 것은 당연하고, 시간이 지나서 나의 의심 세포가 무럭무럭 자라나면 나는 지금의 이 순간을 한번 지그시 뭉개주면서 '나는 한번더 발전했다'라고 생각 할 것이고, 그러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언제나 정답은 심플하지' 라면서 또 한 꺼풀 벗었다고 착각 할 것이고...
까지 생각 하면서 걷고 있는 나의 시야에 무릎 꿇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 꿇은 그의 옆에는 거대한 돌무덤이 있었다. 남자는 그 속에서 무작위로 돌을 하나 꺼내고선 두손으로 조심스레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공중에서 돌을 잡은 손을 놓고 있었다. 돌은 당연히 공중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내는 땅에 떨어진 돌을 다시 돌무덤 맨 꼭대기로 던져 올리고서는 다른 돌 하나를 꺼내서 공중으로 가져갔다가 공중에서 돌을 놓아 땅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그의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으나 그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은체 계속 허공에 돌을 올려 놓으려고 하였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는 공중에 돌을 띄우기 위해 새로운 돌을 하나 집었다.
"하늘에 띄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 돌이 무엇인데 하늘에 띄우려고 하십니까" 나는 가장 묻고 싶은것을 물었다.
"가치입니다. "
그가 허공에서 돌을 놓자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돌이 허공에 뜨기도 합니까?"
그는 말 없이 자신의 오른쪽, 즉 돌무덤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꽤 먼곳에 정말로 허공에 빛나는 무언가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떠있다기 보다는 공중에 고정되어 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 할 것 같았는데, 허공에 떠 있는 그것은 눈부신 빛을 뿜으면서 공중에 떠있었고, 나는 그것이 그러할까 어째서 그러 할 수 있을까 해서 좀 더 다가갔다. 하지만 그 빛은 생각보다 강렬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기 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한참을 관찰하였는데, 그 빛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저 남자가 왜 그토록 '가치 있는 돌'을 찾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나도 나의 돌무덤이 있다면 그곳에서 한번 마음껏 가치 있는 돌을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늘에 떠 있는 그것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가능하다면 '고귀함' 라는 단어를 붙여주고 싶었다.
나는 돌을 고르는 사내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에게 다시한번 질문했다.
"저기 있는 저 것이 돌이 확실합니까?" 사실 나는 그가 고르고 있는 돌중에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곳의 돌을 가져가 저곳에서 허공에 띄우게 한 사람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져간 돌이, 하늘에 뜰 수 있는 유일한 돌이면 어떡합니까"
"그는 가기전 나에게 아직은 남아있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니라고 말을 하자니 나도 이미 허공에서 빛나는 '가치있는 돌'을 보았으므로, 사실은 나도 그의 옆에서 돌을 같이 고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그리하여도 되겠냐고 말을 하자 그는 나에게
"당신은 좀 더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던길 마저 가기로 마음 먹고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이내 몇 걸음 가지도 않고서 그가 고르던 '가치있는 돌'에서 나는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처음 느껴지던 잔디위에서의 가벼운 발걸음은 이내 내게 큰 위안이 되지 못하였고,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해줄 옷가지 매우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이 편안해지는 만큼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이 더욱더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