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후네가 서울에서 이사온지 벌써 4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당시만해도 '은후'의 친가외에 동네 주민들 모두가 서울에서 이사온 '은후네'를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겼다.
당시 차라곤 '포터'트럭이 전부이며 경운기가 대부분인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번쩍 번쩍 하는 고급승용차 한대가 마을 어귀에 '처억'하고
멈춰서고는 도시냄새가 풀풀나는 남자가 내려
" 중촌리가 어디에요?" 라고 서울말씨로 물었을때부터 그랬고 ,
이사온후 '돌림떡' 대신 손수 구워왔다며 면내 제과점에서 파는 '쿠키'를
은후어머니가 집집마다 돌렸을때도 그랬다.
반상회나 부녀회에서는 '은후네'라는 말만 나와도 분위기는 시끄러워지기도
했고 때로는 조용해지곤 했다.
하지만 '은후네' 친가가 중촌리 이장집이기도 했던 터라 주민누구도 '은후네'나
'은후네'친가 앞에서는 함부로 '텃새'하지 않았다.
그러던 주민들이 '은후네'에 대해 호감을 갖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은후네가 중촌리에 이사온지 다섯달이 지난 어느날.
중촌리를 포함한 파주일대에 그날은 '호의주의보가' 발령 되어 엄청난 양의
강수량을 기록했고, 논이면 논 , 밭이면 밭 모든 농지가 침수되어 주민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날이였다.
그날 마을 이장을 비롯한 '은후네'는 중촌리 마을 논, 밭을 고루 돌아다니며
배수로를 파고 펌프질을 해댔고 무너진 뚝을 다시 쌓았다.
비가 그치고 나서는 각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고장난 계량기와
가전제품따위를 손수 수리해주었다.
그로인해 중촌리 마을은 호우피해를 그나마 덜수 있었고 덕분에 은후 아버지는
'만능박사'라는 별칭까치 붙여졌다.
그뒤로도 재해나 마을에 어려운일이 닥치면 '은후네'는 항상 앞장서왔고,
거기에는 어린 은후도 늘 동참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뭘 했겠냐?" 라고 생각 하겠지만은
은후는 누가 시키지않아도 제 할일을 알아서 하는편이었다.
비가 오는날은 귀여운 청개구리장화를 신고서 종종걸음으로 논,밭에 들어가
무너진뚝 여기저기에 찰흙놀이하든 진흙을 손바닥으로 탁탁- 하며 붙여댔고,
어머니가 품앗이를 하러 고추밭에 가는날이면 어머니옆에 붙어서는
귀여운 손으로 조심스래 '고추따기'를 도왔다.
이런 은후가 동네주민들에게 귀여움을 받는건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은후네'도 점점 중촌리 마을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은후네'아버지는 서울에서 알아주는 명문대 출신의 대학교수였다.
그런 그가 명문대 교수직을 버리고 휴전선 인근의 촌구석에서 살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는 순전히 은후의 할머니 때문이였다.
그도 그랬던것이 은후의 아버지는 친인척 모두가 두손두발 들고 인정하는
효자였던것이다.
장남이면서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산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은후의 아버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자신의 불효를 용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과거 세미나 차에 4박5일간 상하이로 부득이하게 출장을 간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 은후의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던일이 있었다.
부랴부랴 은후의 알버지는 정신없이 한걸음에 내달려 병원을 찾았고.
병원을 찾았을때는 아버지 대신 기품있는 영정사진뿐이었다.
그때 은후의 아버지는 마치 실성한 사람인양 한동안 멍하니 초점없이 벽만
보았다가 은후의 고모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다" 하고 유서를 건내줬을때
길고긴 한숨을 내쉬었다.
은후아버지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은후할아버지의 유지를 읽어 내렸다.
유지를 읽는 동안 중간 중간 아버지는 오열과 실신을 반복했고
은후의 할머니가 은후 아버지의 머리를 무릎에 눕히고 입에 냉수를 한모금씩
밀어넣자 그때서야 일어서 할아버지 영정앞에서 절하며 통곡했다.
그렇게 은후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로부터 1년후 명절을 맞아 은후네 가족은 친가에 내려갔었는데
당시 은후의 작은아버지를 비롯한 친인척 모두가 은후네 가족을 마중하러
동네 어귀까지 나와있었다.
하지만 은후의 할머니 모습은 그 무리 어디에도 보이지않았다.
그래서 은후의 아버지가 은후의 작은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 하고 물었다.
은후의 아버지가 " 지금 막 잠드셨어." 하고 대답했다.
은후의 아버지는 친가에 들어서고 바로 "어머니. 저왔어요 " 라고 약간큰소리로
은후의 할머니를 찾았다.
그러자 방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초췌하고 매마른 모습의 은후 할머니가
"왔어?" 라고 되묻고는 은후아버지를 반겼다.
은후아버지는 은후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할머니를 덥썩 끌어 안고는
마치 아기를 대하듯 볼을 비볐다.
" 우리 엄마 , 왜 이렇게 늙으셨어? " 라고 말한후 은후아버지는
한번더 은후할머니를 꼬옥 끌어안았다.
명절을 보낸후 돌아와 .. 은후의 아버지는 이사를 결정했다.
은후의 어머니가 처음엔 약간 반대를 하였지만.. 완강한 아버지의 주장에
결국 반대의 뜻을 굽혔다.
그해 9월 , '은후네'는 서울에서 파주 중촌리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