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이 났다.
어쩌면.
그와 그렇게 잘되더라도, 행여 연인이라는 관계로 묶인다고 해도,
결국은 변하겠지.
변하는 대상이 나이든, 혹은 나에 대한 사랑이든.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사실 해보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게 좋았고, 다른 여자 이야기에 질투를 좀 느꼈을 뿐이다.
그런 내가, 문득 그와 함께하는 상상을 하자,
기쁜 나날들 보다는 언젠가는 변하게 될 그의 마음부터 걱정됐다.
그래, 결국은 이런식의 겁쟁이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가 짐짓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와 사랑과 우정 사이를 애매하게 오고가는 관계였던 것도 아니고,
최근들어 이상하게 적극적인 나를 눈치 못챘다면 그건 말이 안된다.
그리고, 어쩌면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그 역시 나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모른 척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그를 나도 모른 척 하고 있다는 거다.
언젠가는 결론이 나겠지.
아니면 계속해서 서로 모른 척 하며 넘어가던지.
상대방의 감정을 알면서도 아주 극한의 이기심때문에 모른 척 한 경우가 있어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잘한 짓일까.
헤어진 그.
그의 마음이 계속해서 변해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열심히 노력하고, 나 또한 열심히 노력해도,
더 이상 사랑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모른 척 했던 적이 있다.
헤어지는 게 두려워서.
그를 잃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역시나 결론은, 못할 짓이라는 거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일이라면, 모른 척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야 말로 지금의 내 마음과 상황과 아픔 모두를 짐짓 모른 척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차마 마주할 용기따위가 없어서.
결국은 또 내 마음을 호소할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화'로 돌변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것이 '기댐'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모른 척 한다고 해결될 문제들이 아닌데.
언젠가는 마주해야 될 문제들인데.
모른 척 앞만 보면 내달리다가는 정말이지 큰 괴물로 변해 날 덥쳐버릴 것만 같다.
마주하자.
마주해야지.
때로는 뒤돌아볼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