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청년불교잡지 법향의 표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불교의 고루한 모습을 파괴한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 올렸습니다.
1.우리는 세상에 속아서 살아왔다.
나중에야 느끼는 것이지만 어릴때부터 학교교육이라는 것을 받으면서 당했던 가장 큰 사기는 "높은 꿈"을 가지라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꿈을 물으면 의사, 변호사,대통령(우리때는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연애인, 스포츠 스타,기타 여러가지 그럴듯한 직업들을 말하는데 이것은 철저히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한 모순이다.
일반 초등학교의 경우 이렇게 근사한 직업을 가질 확률은 전교생의 1%도 안된다. 나머지 99%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 시스템상 그렇게 되어있다.
고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가 있는 반면 그 건물을 청소하고 주차장을 관리할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항상 반론이 나온다. 1등을 목표로 하고 열심히 살아야 나중엔 2등, 3등이라도 한다는 것이다.이런 말은 경쟁사회에 철저히 중독된 사람들의 주장이며 내가 말한 모순에 아무런 해결책도 주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만 세상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 물론 경제성장에 따라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큰 폭은 아니다. 일정한 재화에서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다.반면,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반대로 적게 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어떤 음식점이 장사가 잘되면 그 옆집이나 부근에 있는 음식점은 그 여파로 손님을 뺏길수 밖엔 없다.어떤 정책이든 교육이든 다수에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90%에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면 좋은 것이지만 1%만 혜택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다른 나라는 안가봐서 모르겠다.그러나 비슷하겠지.)의 교육이나 사회분위기는 이런 식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소수의 성공한 집단에 들어라.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질을 잘 파악해서 개발하고 꾸준히 노력해라.뭐, 이런식이다.그런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거다.
모든 사람이 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도 사회의 시스템을 무너뜨릴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에서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많이 가져가면 나머지를 그 다음 사람이 가져가는 식이다. 모든 고등학생이 정말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서울대 커트라인이 올라갈뿐 모두 서울대에 합격할수 없는 이치와 같다. 모든 사람이 정주영회장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크게 사업을 벌여도 모두가 현대그룹처럼 대기업을 만들수는 없는 것과 같다.
이미 결과는 뻔한데도 극소수의 성공한 집단에 들으라며 선동하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아닐까?내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설명을 하냐면 현재의 경쟁사회에서는 인간이 행복해 진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론상 절반 이상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잘났건 못났건 개인적으로 볼때는 하나같이 소중한 인생이다. 그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외에 행복해 질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나는 불교에서 찾았다.
2.행복한 종교가 승리한다.
우리나라엔 대표적인 두 종교가 있다.하나는 기독교, 하나는 불교다. 두 종교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두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 교리의 핵심내용을 비롯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당연하지. 다르니까 다른 종교가 됐겠지.여기서 중요한것은 사후관을 비롯해 여러가지 내용이 상반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주장하는데 불교에서는 완전 딴판으로 말한다. 그럼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볼수 있다.결과는 셋중에 하나일수 밖엔 없다.
1.기독교는 엉터리고 불교가 진짜다.
2.기독교가 진짜고 불교는 엉터리다.
3.기독교나 불교나 전부 엉터리다.진리는 따로 있다.
여기서 사후세계는 증명이 안된다. 죽지 않으면 그 후의 세계를 알수 없기 때문이다.(종교의 믿음을 배제하고 경험적으로만 말하면)사후세계이외에 어떤 종교가 옳은지 증명하는 방법은 이 종교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교 믿는 사람이 행복하면 이 종교가 진짜다. 여기서 다시 종교의 목적에 대해 의견이 나올수 있다. 기독교는 불교처럼 행복을 강조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인생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행복이다. 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모든 목적이 들어올수 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