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비를 피해 뛰어 들어간 곳은 이층 카페로 올라가는 출입문 앞이었다. 국지성 호우라는 건 어쩌면 피해간 사람들의 그럴듯한 과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몸으로 그 비는 맞는 동안은 도무지 국지성이라든지 단지 지금뿐이라든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처럼, 혹은 진종일 통점 뿐인 이별처럼. 또 한 사람이 머리를 가리고 황급히 뛰어와 선다. 젊은 여자다. 젊은 여자라는 말은 다분히 자극적이다. 여자라서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젊기 때문에, 모든 사연을 향해 열려있는 '젊다'라는 이유 때문에. 머리를 가리고 있었던 것은 한 권의 책이었고 그래서인지 젊은 여자의 머리카락엔 적당한 물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울 준비는 되어 있다. 한손에 내려든 책을 바라보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며 손이 운다고 생각했다. 읽어보셨어요? 책을 보고 있던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손가락을 보고 있던- 나는 기습적인 작은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 책, 읽어보셨나 해서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니오. 내가 대답했다. 빗줄기는 아직도 세차게 퍼붓고 있었고 나는 내가 너무 멍청하게 대답했나 싶기도 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던 건 이런 일시적인 공간과 침묵이 어색해서였으리라. 그런 저런 이유로 나도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무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했다. 아니, 말을 했다기보다는 그저 무료해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 생각엔 관계의 딜레마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책 말이에요. 사람의 관계가 곧바로 결핍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면 사람을 절실히 사랑하지 못하고 또 사랑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싶었지만 특별하게 할 말은 없었다.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거니와, 처음 보는 젊은 여자의 뜻밖이고도 자조적인 감상에 끼어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조금 약해지자 젊은 여자는 가려는 듯 매무새를 고쳤고 나는 담배를 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읽어보시겠어요? 그녀가 내게 책을 건네며 말했다. 네? 그래도 되겠어요? 약해진 비처럼 수동적인 내게 그녀가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이미 몇 번이나 읽었고 또 아직 울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까요. 한껏 멋을 부린 대사와 함께 책을 건네주고는 젊은 여자 하나가 저편으로 단편소설처럼 사라져갔다. 울 줄비는 되어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은 아직 표지에 빗물이 마르지 않았다. 횡재다. 일단은 우산 대용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