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참 많은 비가 내렸다.
조금씩 쏟아지는 비는 회색도시 속에서 센티멘탈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센티멘탈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미 충분히 모순적인 그들은 비의 의도를 무참히 무시해버린 채 약간의 흥분상태로 비를 맞이하게 된다.
흔히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드라마가 우리의 머리 한구석을 차지해 버린 후 부터, 비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일종의 진정제 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면, 오히려 약간의 흥분상태를 유지하며, 그 속에서 헤어나오길 거부한다.
올해와 같이 비가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쏟아지는 해에는
이렇다 할 감상에 잠기기 보다는 목숨과 가족과 재산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상에 잠길 여유따윈 가지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수해때문에 사랑하는 이들과 것들을 잃은 이들에게
내 글 따위는 시덥잖은 헛소리이자 그들의 부화를 지르는 기름의 역할밖에는 안 될 것이다.
단지, 비가 오는 날-물론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양이 아니라- 처음에 말했던 약간의 흥분상태로 이끌 수 있는 자극제가 될 만큼- 사람들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그 날의 매력을 딱히 말하자면, 마력을 나눠주고 싶을 뿐이다.
또 한 편으로는, 어떤 자연의 상황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버리는 이들에 대한 자그마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여겨도 좋겠다.
비가 오는 날, 그렇게 억수로 차분히 오는 날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본 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리 똑
저리 똑
당신이 매번 걸어오던 그 잡아먹을 듯한 시커먼 시멘트 위에도,
당신이 매번 들렀던 그 가게의 굳게 잠겨진 철창 으로도,
그리고,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유리창 우에로,
고놈의 작은 것들은 제 몸을 한껏 으스러뜨리며, 부서진다.
아니, 으스러뜨려진다기 보다는 그저 깨끗하게 죽음을 맞는다.
공중에서 그냥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머리 위로 당신 몸을 칭칭 감고 있떤 일상의 모든 어설프지만, 당신만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것들에게 무수한 폭격을 날림으로써 아름다운 핏빛 잔흔을 남긴다.
철창에 떨어지며 부서지는 건 결국 그 자신이건만,
오히려 부딪힘으로서 狂시곡을 연주해 낸다.
당신의 벽을 작은 몸으로 부서내며, 오히려 합쳐질 때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광시곡.
그것뿐인가?
아침에 그들의 잔흔은 상긋한 흙내음으로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풀잎 위에
남는다.
오늘도 그들의 광시곡을 감상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