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시절 우리 식구는 경상북도 지방에 있는 의성면이란 곳을자주 갔다. 중2때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와 그분을 모시고 계시던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서이다. 텔레비젼이나 친구들과의 놀이에 익숙해진 유년의 나는 그곳에 가는 것이 왠지 꺼려졌다. 내 또래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증조할머니가 끼고 있는 첼레비젼을 내것으로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외증조할머니가 치매로 인해 정상적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 며칠밤을 보내고 오기 때문에 그곳은 유년의 나에게는 창살없는 감옥이나 진배없임이였다. 그런 내 지루함은 투정으로 바뀌었고 그런 날 달래주기 위해 내 아버지는 어린 내 손을 잡고 거북산으로 가셨다. 어느 지도에도 그 산이 거북산이라 지칭해놓은 것이 없다. 그저 두봉우리로 되어있는 모습이 거북이 모양이라 흡사하여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부르던 이름이였다.
이미 골이 날때로 나있는 어린아이는 어른도 제법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북산으로 가는 길이 정말 지겹고 힘들었을 것이다. 얼굴에 눈물자욱이 흥건히 젖어서는 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정말 한참을 갔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미 그 산에 오르기 전에 그곳에 매료되어 버렸다. 지겨운 논을 지나고 나니까 제법 큰 개울(물론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말이다.)이 나타났다.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 힘들 정도로 얼음장같은 물이 이미 나의 벗이 되었고 흐르는 물속에 잇는 돌을 들추면 나오는 다슬기는 정말이지 신비롭기까지 했다.
난 산에 오르고 싶었다. 그 거북산에 오르면 무언가 지금보다 더 신비하고 재미있는 것이 날 기다리고 잇을 것 같았다. 근데 그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개울을 건너야하는데 그때 있던 다리는 어린아이인 나에게는 매우 위험해보였다. 그래도 자연에 재미가 들어버린 나는 내 스스로 그 다리를 건너기위해 꽤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한발 내딪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이상은 내 능력밖이였다. 그런 어려움은 내 아버지덕에 쉽게 해소되엇다. 내 아버지는 나에게 등을 돌리면서 쭈그리고 앉았고 난 망설임없이 그위에 올라갔다. 나에게 그렇게 힘겨워보이던 그 다리 건너기가 아버지의등을 빌리니 어찌나 쉬운지..... 그 다리를 건너가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 같다. 비록 존경이란 말도 알지 못했지만.... 그 다리를 건너게 해준 내 아버지는 정말이지 산과 같은 존재였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아버지만 있으면 모두 해결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리하나쯤은 혼자서 거뜬하게 건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내 생각도 내 몸처럼 많이 커져버렸다. 그때부터는 산과 같은 존재였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해다. 독단적이고 귄위적인 성격이 싫었고 독재자와 같은 행동이 나와 아버지 사이를 멀게만 만드는 거 같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먹었던 그 마음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니 정말 꽤 오랜 시간이였던 것 같다.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였다. 그건 크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먹었다는 것이 우스울지경이였다.
그렇게 보내던 고2 어느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들은 다 제각기 자기 할일만 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을 보고 아버지는 일주일동안 지친 피곤을 잠으로써 풀고 계셨고 어머니는 또 나름대로의 소일거리를 하고 계셨다. 난 되도록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내방에 있다가 잠깐 물이라도 한잔 마시러 나오면서 반정도 열린 안방문을 사이로 잠을 주무시고 잇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뒷모습. 어린시절 다리를 건널 때 빌려주시던 그 등이 아니였다. 그때는 분명히 아득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크고 넓었는데 누워계신 아버지의 등은 너무 초라한 늙은이의 등같이 외소해보였다. 그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토록 넓었던 등이 왜이렇게 초라해졌는지....난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때문에 콧날이 찡해졌고 곧 눈물을 흘렸다.
내 아버지의 등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위해 희생되었다. 하루하루 힘든일을 하면서 자식하나만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등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외소해졌는지 그건 다 날 위해서 그렇게 된것이였다. 다르를 건널때도 날 위해 쓰셨던 등을 이제까지 순전히 날 위해 쓰셨던 것이다.
난 처음으로 진심으로 아버지 어깨에 손을 오리고 안마를 해 드렸다. 지금으로써 내가 지친 아버지를 위해 해줄수 있는것은 그것뿐이였다. 그렇게 좁아진 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아버지는 언제나 그 건너기 어려운 다를 쉽게 건너게 해주던 산과 같은 존재였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가 없이는 지금의 내 모습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마음은 군대를 무사히 전역한 지금에서도 변함이 없다. 요즘도 자꾸 작아지는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다짐하면서 되내인다.
"아버지 언젠가는 그 다리를 혼자서 건너지 못하실 때가 오시겠죠.그 때는 제가 아버지에게 등을 빌려드릴께요. 정말 안전하고 푸근하게 그 다리를 건너서 거북산으로 모시고 갈께요. 사랑해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