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허준도 손 못댈 말기 왕자/공주병 환자가 아니라면, 어디 한 구석은 부족하고 모자라다 싶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부족하고 모자란 구석이 얼마나 있고,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있다.
나같은 경우는 컴플렉스가 좀 심한 경우다.
우선 나는 키가 작다.
아무리 내가 내 키 반올림해서 161.0(160.5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이고, 이게 내 나이 또래의 평균키라고 주장해봤자,
고개를 치켜 들어야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나 후배녀석들을 보자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찌할 수없다.
역사를 보자면 키작은 사람중에 위인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키크면 싱겁다는 얘기도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위인 안 되고 좋고, 싱거워도 좋다.
반바지 입어서 종아리가 제대로 보였으면 좋겠고, 한번에 계단을 서네개 이상 오르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키는 선천적인 원인보다는 후천적인 원인이 크다고 하던데, 내가 어릴 적 못 먹고 자라서 그런가?
먹는 걸로 따지자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
초등학교 내내 우유를 마시고, 밥도 남들보다 더 많이 먹던 내가 아닌가?
초등학교 이후 우유에 질려서 중학교 이후 우유을 안 마신게 원인이 아닐까?
아니면 성장기에 운동을 안 해서 그럴까?
엄마 말씀으론 내가 배속에 있을때부터 이상이 있어 몸이 몹시 허했다고 한다.
배아파서 낳아봤더니 어째 영 비실한게 병원으로 데려갈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집에서 우리 4남매를 출산하셨다.)
그래도 살아남은게 어머니는 감사했다고 하니 뭐 키작다고 투덜거릴 수는 없을 듯 싶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태도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 정도면 된다 하시면서도 은근히 여자는 20살까지 자란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들은 낭설이길래 이미 자랄대로 자라버린 성장판이 다시 자랄 거라고 믿고 계신지....
키는 그렇다고 치자.
나는 너무나 심각한 반곱슬머리다.
곱슬머리도 아니고, 반곱슬이 무슨 문제야 싶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곱슬도 반곱슬 나름이다.
머리카락과 관련된 내 별명들을 추려보자면, 돼지머리털, 철가락, 강철머리 등이 있다.
머리숱이 너무 많고, 머리카락이 너무 억세고 굵어서 내 평생 머리카락 싸움을 해서 져 본적이 없다.
내 평생 직사의 머리카락을 가질 날이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흔들거리는 머리결.... 뛸 때 위 아래로 사뿐히 찰랑거리는 머리결...
내겐 그런 직사머리결은 신의 최고의 축복이자 미인의 전제 조건처럼 보였다.
까짓거, 길러서 펴면 될 것 아냐?
근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우선 머리를 기른다는 것이 머리숱이 많다보니까 좀만 머리카락을 길러도 머리가 엄청 크게 보인다.
아무리 젤을 발라 머리카락을 바짝 죽여놓아도, 몇 시간 후면 친구들은 내게 묻곤한다.
"야, 너 머리에 뭐 좀 바르고 오지, 왜 그냥 왔냐?"
난 차마 이게 바른거야 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럴 땐 그저 쓰게 웃는다.
그럼, 모자를 쓸까?
모자를 쓰면 뭐하는가, 얼굴형이 각진탓에 모두가 모자쓰기를 말린다.
보기 흉하다나?
그래도 내 평생의 숙원은 꼭 직사머리가 돼보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의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헤어디자이너 아저씨의 조언대로 염색을 하고, 산성샴푸를 쓰면서,
근 1~2개월동안 머리를 길렀다.
그 동안의 시간은 내겐 악몽과도 같았다.
도무지 감당이 되는 않는 머리를 보고 있자니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동안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집밖을 나다녔을까?
이게 바로 용기도 와신상담하는 자세가 아닐까?
여하튼 결전의 순간...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 헤어디자이너 아저씨를 찾아갔다.
'매직해주세요'
(스트레이트와 매직 스트레이트의 차이는 다들 알고 있겠죠?)
뭐 한마디로 나같은 최악의 머리결에는 매직 이외의 방안이 없다.
생각해보면 몇년전 스트레이트를 했는데,
(집에서는 약 사다가 수십번도 했지만, 전혀 도움이 안됐다.)
머리를 감을때까지는 그런대로 펴진것 같더니, 드라이로 말리는데 전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본연의 곱슬머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같으면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머리가 이러냐고 따지겠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건 미용사언니들의 잘못도, 약품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까짓 자극에 꿈쩍도 안 하는 내 머리카락의 문제였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 미용실을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해결책은 결국 매직이었다.
매직은 스트레이트보다 시간과 절차가 복잡했다.
특히 인두같은 걸로 머리카락을 지지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도...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근 2시간이 넘은 듯 싶어서 샴핑을 하고 머리를 말렸다.
이런... 믿을 수가 없어....
감격스러웠다.
그래.. 이게 직사머리란 거야.. 이게 바로....
거울속에는 마냥 웃고 있는 직사머리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미용실을 나왔다.
천하를 얻은 듯한 느낌이 이럴까?
근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해짐을 느낄 수있었다.
앞머리는 직사인데, 옆머리가 마치 번개머리처럼 뻐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난 만족스러웠다.
이정도면 대 성공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부근 가슴을 안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아~~... 처참했다.
언니들은 모두 내가 레게머리를 한 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뜨악한 내가 이건 레게가 아니라 매직이라고 말하지 언니들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당장 그 미용실가자는 얘기부터, 진작에 머리 자르라니까 이제 무슨 추태냐는 얘기까지...
내 기대가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하루는 너무나도 우울하고 침울한 날이었다.
하지만, 결국 난 계속 이 레게매직 머리를 하고 있다.
이 머리가 레게머리건 매직머리건 내겐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머리라는 생각에서다.
결국 컴플렉스의 해결책은 자신에게 있는 듯 하다.
컴플렉스가 욕구불만과 자기비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자기 자신이 만족하기만 하다면 남이 뭐라고 하든 컴플렉스는 해결되는 것이니까...
나는 앞으로 얼마동안은 내 머리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
언니들의 눈총과 타인들의 이상한 눈초리가 어떻든 간에,
이제 나는 절반은 신의 축복을 받은 자고, 미인의 전당 정문앞에까지 도달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제 나는
각진 얼굴과 지저분한 피부와,
많은 점들과 쌍거풀없는 눈과,
빈약한 몸매와,
텅빈 머리와,
조울증적인 성격과,
두박자 늦은 운동신경과,
시대착오적인 기계사용감각만을 해결하면 된다.
생각하면 행복은 정말 간단하고 쉬운 거란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