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시집을 가기 몇일전에 나는 누나에게 청바지를 사달라고 졸랐다. 언제나 튕기기만하던 누나가 선듯 청바지를 사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누나가 나의 누나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서로가 가족임을 절실히 느낀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한 집안에 살 비비며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타인인듯이 버텨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부모님들이 무엇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누나오빠 그리고 내 동생들이 왜 저러는지 다정다감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후 그렇게 억척스럽게 공부에 매달리던 내 동생은 조금씩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보일듯말듯하던 동생의 헛발질은 급기야 깊은 진흙속으로 빠져들었다. 불량스러운 아이들과 어울리고 술을 마시고 언제나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이 평상의 생활이 되어버렸다. 장남으로서 그리고 내동생의 오빠로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난 집이 싫어. 편하질 않단말야" 내 동생이 윽박지르는 나에게 항상 대꾸하던 말이다. 왜 그렇게 착하고 열심이던 동생이 갑자기 그리 되었는지?. 동생을 누구보다도 아끼던 아버지의 빈자리때문일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이 내 머리속을 어지러혔다. 나는 내 동생을 남들이 말하는 똑바른 길을 걷게 할 의무가 있었다. 그 일에 내가 충실했는지 아닌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다. 나도 같이 흔들렸었으니깐....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께 나는 항상 말했다. "괜찮을거예요. 아직 어려서그래요. 자신의 모습이 실증나면 괜찮아질거예요". 위안이 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난 그렇게 내 동생을 믿었다. 언젠가 나는 내 동생의 빰을 때린적이 있었다. 너무나 격분한 나머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내 동생의 빰을 때린것이다. 그리고 나는 집을 나와 벤치에 앉았다. 잠시후, 동생이 따라나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오빠, 미안해. 하지만 나도 지금 너무 힘들어." 난 그날 내 동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빠로서 해 준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서글퍼하면서...
시간이 지나 내가 대학을 졸업했고,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청출어람이란 말을 여기에 적용해도 되는걸까? 언제나 삐뚤어진 골목에서 삐뚤어져있더 내 동생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믿는다.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가 버거울때가 있을꺼야. 그럼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야돼. 더욱 건강하고 성숙된 자세로 말야. 난 널 믿는다]라고 기도했던 어머니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던걸까?. 내 동생은 차츰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보조로 일하던 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행사도우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오빠 생각은 어떠냐고..처음에는 반대를 하다가 나중에는 그래 그럼 한번 해봐라라고 말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때 해봐라는 것이었다. 부딪혀보고 버거우면 그 곳에서 다른 길을 찾으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우려일뿐이었다. 동생은 그 일을 잘 해내었고 여기저기서 추천이 들어오고 전속고용하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동생은 프리랜서가 좋다며 거절했고 난 내 동생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내가 대학원을 진학한다고하자 내동생은 등록금을 선듯내주었다. 내가 백수일때에는 [남자는 지갑이 든든해야 돼]하며 언제나 만원짜리 몇장을 채워주었고 언제나 깨끗한 옷으로 나를 치장해주었다. 내가 결혼하면서 전세구할 돈이 보족할때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자신의 적금을 깨버렸다. 그렇게 속을 썩히던 내 동생이었는데....이제는 내가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들 왔어] 라며 너스레를 떠는 내동생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부족한 오빠를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오빠로 착각하고 있는 사랑스런 내 동생이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난 내 동생이 사랑스럽고 고맙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라고 질문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 좋아. 내 동생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