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내 이름조차 쓸 줄을 몰랐고 숫자개념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구구단을 모두 외웠을 정도로 나는 성적표를 받으면 [가가가가가양가] 투성이었다. 학교에 일찍 들어간 관계로 나의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다. 학교진학을 하면서 한번도 재수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며 군대 또한 짧게 근무했으므로 나의 친구들과 나의 나이는 격차가 심해졌다. 그렇게 나는 두세살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였을까? 재수를 했다는 녀석이 나의 후배로 입학했다. 그러니깐 나와 동갑이지만 학년은 내가 높은셈인것이다. 녀석은 나에게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렀다. 녀석은 나보다 키가 훨씬 컸고 덩치도 좋았다. 어촌에서 자라 중학교때부터 외지에서 학교를 다녔다고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생각하는것이 내심 깊었다. 반면에 나는 서울에서 자란 철부지였다.
녀석은 나를 형처럼 생각했을까?. 녀석이 나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모임이라던가 무슨일이 있으면 항상 내 옆에 앉았고 항상 나를 찾았다. 바삐 등교하는 나를 뒤에서 안기며 환한 웃음을 짓기도 했고 늦은 저녁 보고싶어서 왔다며 술을 사들고 온 적도 있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없다. 형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방패가 되어줄 형이 있었으면 했었고 같이 뒹굴면서 장난칠수 있는 남동생이 있었으면 했었다. 녀석은 나에게 형이면서도 남동생이었다. 나를 꾸짖을 때도 있었으며 나에게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었으니깐.
어느날 녀석과 나는 주말을 이용해서 시내로 나갔다가 녀석의 제안으로 옷을 한 벌 샀다.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였다. 그 녀석 또한 똑같은 옷을 골랐다. 아무 의미없이 옷을 샀을 뿐인데 그 옷을 입고 나타난 우리를 보고 선후배들은 트윈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 트윈스와 딱 맞는 커플이라나..녀석은 트윈스라는 별칭을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 녀석이 결혼을 했다. 첫째딸과 둘째 아들을 잘 키우고 있다. 어린애인줄로만 알았던 녀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녀석이 군대있을때였다. 친한 선후배들과 그 녀석 면회를 간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의 재수씨인 그 녀석 여자친구도 같이 갔었다. 녀석이 외출을 했다. 순간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한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 두 팔로 목을 감고 뒤뚱뒤뚱 움직였다. 무슨 냄새라도 확인하려는 듯 나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대기도 했다. 녀석은 무척이나 내가 그리웠었나보다. 그런데 지금의 재수씨는 뒷전이고 나에게만 어리광을 피우니 내가 여간 낯뜨거운게 아니었다. 그런 나의 반쪽, 같이 있어야 트윈스가 될 수 있는 그 녀석이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된것이다.
[난 항상 소년이고픈 소년이야, 선배]라고 말하던 녀석이 생각난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어깨가 무거워졌을 녀석이 가끔씩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항상 어린아이같던 녀석이 그리울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녀석이 말하던 소년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며칠전 그 녀석과 통화를 했다. 나는 대뜸 물었다. [너 아직도 소년처럼 살고 싶니?] 그 녀석은 피식 웃으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소년이 될 수 없음을 느껴서였을까? 괜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항상 소년이고파하는 소년..귀뚜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