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저마다 일명 "내노래"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노래가사가 자기얘기같아 저마다 가슴속 깊이 노래를 숨겨두고 저도 모르게 18번 노래가 됬을지도 모른다.
내게도 그런 "내 노래"가 있다. 아니.. "내노래 들"이라고 해야 맞나..
그 많은 노래들이 하나같이 다 내 얘기인지.. 들을수록 놀라게된다.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친구들이나 알법한 그런 얘기들이 어느순간 유행가가 되고 그 유행가는 트롯이다 발라드다 댄스다 하며 제각기 제자리를 찾아간다.
흔히 말하는 장르가 틀린 노래 여러가지 골라서 듣노라면 꼭 자서전을 읽는듯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노래가 그노래겠지만 말이다.
내가 "내노래"로 찍어둔 노래중에 유일하게 노래방에서 부르지 않는 노래 하나가 있다.
아마도 그 노래를 불르면 주변사람들이 눈치꽤나 줄지 모른다. 나이도 어린것이 주책이라고 할지 모른다.
평소 만화주제가도 곧잘 부르던 나였지만.. 그건 차마 부르지 못하겠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노래를 안부른지도 십이년이 된듯하다.
마지막으로 부른게 언제였더라.. 위에 말한 기억대로라면 육학년 수학여행 가던 버스 안이었고,, 친한 친구와 함께 부르려 했으나
소심한 친구는 가만히 박수만 쳤고 나는 목청껏 그 노래를 불러제쳤다.
"엄마가~섬~그~늘에~ 구~울~따러~어~가~며~연~~...."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왠 섬집아기냐 하는 친구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런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아니.. 비웃어도 상관없다. 그 노래는 그야말로 "내 얘기" 니까..
그 노래가 내 얘기가 된 계기를 말하자면 내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아마도 내가 대여섯살 무렵이었을게다. 네살차 나이나는 언니와 같이 텅 빈집을 보고 있었나보다.--그 집은 반쯤은 금이 가 있을정도로 낡았고 비오는날엔 비도 새고 뒷뜰엔 몇십년 묶은 고목감나무가 자리잡고 있었고,, 앞마당엔 빨랫줄이 있었고 구석진 자리엔 이름모를 열매나무가 자라나고 있는.. 그야말로 전통적인 시골집이었다.--
그날.. 섬집아기가 내 노래로 된 바로 그날말이다.
노랫가사처럼 엄마는 바닷가로 굴을 따러 나가셨다.
다른 식구들은 어디서 무얼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와 언니는 그 낡은 집에 남겨져 있었다.
언니마저 없었으면 가사처럼 나도 낮잠을 잤었을텐데.. 그랬으면 정말 완벽한 조화인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니와 놀고 있는데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부었다. 아니.. 소나기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번개와 천둥이 함께 비는 요란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워낙 겁이 많은 언니는 본능대로 울기 시작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어서 비가 그치길.. 굴따러 간 엄마가 빨리 오길 빌고 또 빌다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언니때문에 결국 나도 울어버린것 같다.
그렇게 계속 울다가 지쳐갈 무렵 비에 흠뻑 젖은채로 엄마가 머리에 굴바구니를 이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보이자 언니는 안심했는지 아님 그런 엄마의 모습때문인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이어린 동생은 울지 않고 언니가 우는 모습에 황당하셨는지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언니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몇시간후 그 비가 그친걸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 추억이 섬집아기를 내 노래로 만들고 만것이다.
아마도.. 그런 기억이 없다면 섬집아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이십년후의 지금..
그 선율이 슬픈 탓인지.. 아님 내 추억탓인지 모르겠지만..
섬집아기를 들을때마다 눈시울이 젖어온다.
아마도 아련한 내 유년시절이 떠올라서이기 때문일테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조카를 재울때마다 그 노래를 부르곤한다.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섬집아기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섬집아기를 들으면 새록 새록 잠이 잘 올텐데..
그런 누군가가 없기에 자위하는수밖에 없겠지...
오늘 밤엔 반듯하게 눕고 내 심장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며 잠들어야겠다.
"엄마는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