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문제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결하는 재미로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고등학생일때에는 성적과 진학걱정으로 인해 폭식을 하여도 살이 찌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넓다란 푸른초원에 일곱색깔 무지개동산에서 룰루랄라 행복하게 노래부르며 근심걱정없이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꿈은 세찬바람에 조각구름이 흩어지듯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꼭 가야만 한다던 높은 대학의 문을 넘어섰을 때 나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은 환상의 나라로 들어오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아니라 [투쟁·단결·쟁취·탄압]이라는 생소한 플랫카드만이 그 넓은 대학가를 생동감있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제 갈길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무리들에 나 또한 휩쓸리어 통기타와 낭만으로 선전하던 TV속 대학이라는 커다란 닭장속에서 타락과 방탕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게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얼토당토없는 진실을 애써 믿으며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양희은씨의 노래중에 하덕규씨의 글에 곡을 붙인 [봉우리]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는 양희은씨가 [내가 재미난 얘기하나 해줄까?]라며 곱게 풀어놓은 삶의 고단함이 고운 목소리를 타고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봉우리를 우여곡절 끝에 정복했는데 정상에 올라보니 또 다른 봉우리가 버젓이 서 있더랍니다. 그리고 또 한 봉우리, 그리고 또 한 봉우리…. 자신이 맨 처음에 올랐던 그 봉우리는 집앞 동산이었던 겁니다. 어떻게 이것이 재미난 얘기인지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수 많은 봉우리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넘어야만 하는 울타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매번 저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벌써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할 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 앞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부동의 자세로 버티고 있는 봉우리는 결혼이라는 봉우리입니다. 어느새 30이라는 숫자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주변사람들의 질타와 우려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글 쓰고 있네?. 장가는 언제갈라고 글만 쓰냐?\" 짬날때마다 끄적거리는 저를 보고 과장님은 반복된 대사를 외우십니다. \"네?\"라고 놀란 듯 말하면 그때부터 줄줄이 사탕마냥 일장연설이 시작됩니다. 부모님과 이미 결혼한 친구들과 늦게 결혼해서 힘들어하는 선배들의 경험담까지 친절하고 자상하게 늘어놓으시며 말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폭풍우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릴때쯤이면 허공에 떠 다니는 수 많은 단어들속에서 한낱 주변사람들의 놀림감으로 전락한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결혼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라며 속으로 똘똘뭉친 응어리를 하나둘 풀어봅니다. 예전에는 결혼이라는 커다란 봉우리가 내가 넘어야할 봉우리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미 바로 눈앞에 버젓히 솟아있는 봉우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넘어볼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혹시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과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한다는 의무감에 휩쓸리어 도매급으로 넘어가진 않을까 두려워서 참 많이도 노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엔 정(情)이란 것이 있습니다. 정(情) 때문에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도 무시못할 정서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정(情)을 말합니다. 전 그것이 슬픕니다.
맞선을 봅니다. 언제나 청바지에 너저분한 난방을 즐겨입던 나는 까만색 양복에 버거워하며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여자 또한 뭐가 그리 답답한지 고개만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인연이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세뇌당한 나는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라고 생각하며 너스레를 풉니다. 여자가 웃습니다. 편하고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라 무진장 무거운 무게가 느껴지는 만남이지만 되도록이면 대학때 미팅하던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노력이 무너져버릴 모래성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슬프기는하지만 말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싱그러운 젊음이 철철 넘쳐 흐를때나 가능한 이야기인가 봅니다. 대학다닐때에는 길가는 도중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남자건 여자건 커피한잔이나 소주한잔, 또한 아이스크림 하나로 서로의 인생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곤했습니다. 집에 가야한다는 여자후배를 붙잡고 저녁식사와 맥주까지 곁들여서 조그맣지만 귀중한 여자후배의 경험담을 훔쳐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나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만났던 사람중에는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아무하고도 자신의 생각을 나누려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연예가 이야기가 전부였던거 같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주 천천히 또 하나의 세상이 문을 엽니다. 그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궁무진하고 진지하며 환상적인 이야기보따리가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자신의 미련함을 탓하기도하고 잘못된 점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잦은 만남을 통해서 사랑과 믿음과 신뢰가 커져갑니다.
하지만 맞선은 다릅니다. 이야기보따리속엔 너무나도 상투적인 문서만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풀어헤치면 국어책 읽듯이 아무 느낌없는 대사가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나의 신상명세서를 궁금해합니다. 평생을 질질 끌고 다녀야하는 꼬리표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따뜻한 말한마디라고는 [첫인상이 좋네요], [착해보이세요], [말 잘하시네요]일 뿐입니다. [저는 비오는 날 마시는 커피의 향을 좋아해요. 댁은요?]라며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떼어주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의 끊없는 수다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결혼입니다. 처음부터 목적을 둔 만남이었지만은 나는 너무나도 슬픔니다.
서른을 막 넘긴 나에게 만남을 순수하게 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삶의 고된 생활속에서 으스러진 어깨를 아무말 없이 꼬옥 안아줄 수 있는 연인이 있어야함과 동시에 으스러진 어깨에 약을 발라주며 갖은 질타와 충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도 있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친구를 사귀기에 버거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의 말) 모든 만남속에서 순수함이 배제되어야만하는 슬픈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못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