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당신 계신 곳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어찌 그리도 마음도 몸도 먼곳에 계셔야 했는지요.
제겐 두시간 남짓 거리에 계신 당신의 남루한 처소에 아슬한 고요함,쓸쓸함에
눈물을 아니 흘릴수 없었습니다.
돌아 오는길에 먼발치 아련해 지는 당신의 손사래짓을 보면서
가슴한구석에 울컥 무엇이 솟아 오르려는 듯
복받치는 설움이 올라왔습니다.
당신의 인생, 당신의 설움.
당신의 지금 그 빈방에서 채워나가야 할 고독의 시간들...
\"아침이면 머리속이 탁햐..뭣이 막힌것 뭔양 희미한 것이 아무래도 맑지가 못햐.
치매가 무서바서 약을 매일 먹는디도......\"
다리를 못쓰게 될까봐 낮에는 우선도 되질 않아 을씨년 스런 TV를 꺼두고
빈방을 서성이며 걸으신다던 당신.
때론 정말 여자로서 살아온 자신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어지는
갈대인것 같다던 당신.
너무너무 적막해 하루에도 몇번씩 울지만,
널따란 창밖으로 싸한 나뭇가지의 흔들림에도 그저 무언가 살아움직이는것 같아
위안이 되신다던 당신.당신께서는 겨울이라 앙상한 나뭇가지로
죽은 영혼을 떠올리시는 것이 아니라 산 영혼을,
살아야 할 영혼을 떠올리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고기를 사러
찬바람도 아랑곳지 않으시고 집을 나서신후
빈방에 저홀로 앉아 보았습니다.
너무 조용한 빈방.
차라리 북적대는 주택가에 자리잡은 곳이라면..
좀 시끌시끌해도 사람냄새나는,이웃이나 여럿있는 집이었음 좋았을것을...
새 건물에 입주한지 얼마 안된데다 워낙 외진 곳에 있는 아파트라
온통 사방엔 고요와 적막뿐이더군요.
젊디젊은 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빈방에서 무슨생각이 들지 모르는데
자식잃고 복받친 설움을 그 외로움의 방에서 토해내고 계셨을
당신을 생각하니 어느새 어깨가 들썩거려집니다.
손 닿는데로 먼지낀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다가
멀쩡한,젖은 수건한장이 쓰레기통에 2/3쯤 들어가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덜컥 겁이나더군요.당신.당신의 그강한 정신력을 상기할 여유도 없이
덜컥 이제 벌써 68이라는 당신의 배부른 나이와 함께 밤새 뒤척이시다가도
어젯밤은 내가 있어 잠이 잘 오더마..라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당신의 주름진
눈가를 생각하니 금방 숨이 멎는것 같이 겁이 났습니다.
그 수건을 다시 집어 욕실에서 비누칠을 해 깨끗히 빨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당신은 오시질 않으십니다.
바람이 쌩쌩부는데 큰길하나지나 있는 마트에서 고기근을 사서
슬렁슬렁 오시고있을 당신의 휜등이 눈에 밟힐 듯 합니다.
점심을 먹고 오늘은 가봐야 한다고 일어설 준비를 합니다.
당신은 차마 내친김에 더 있다 가라는 말을 직접 내뱉지 못하시고
날이 추워 나가면 큰 고생일거라며 자꾸 제마음에 가책의 사슬을 묶습니다.
상을 치려는데 갑자기
\"그것마저 내가 치울것 없으면 난 울기다...\"하시며
다시는 그릇에 손도 못대게 겁을 주십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상을 다치우고 오든 치우지않고 오든 당신은 오늘밤 또
울적함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훔치실 것을요.
내일은 큰 아버지 생신입니다.
당신이 사오신 미역을 보면서
\"조금더 있다 가셔도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에
지금당신의 심정은 얼마나 억울하시겠는가...가슴이 아픕니다.
겨울하루는 무척이나 짧아 세월가는게 빠를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빈방에서 지내는 하루하루는
낮이건 밤이건 너무 길기만 합니다.
아~덜컹거리는 고속버스안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나를 보내시고
당신은 또 그 빈방에서 무얼하고 계실까요.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슬픔과 죄스러움을 잠재우지만.
당신은 그무엇으로 그 적요함과 고독함과 억울함의 한을 잠잠하게할수 있을까요.
오늘밤 나는 조금 몸이 지쳐 있어도 쉽게 잠을 잘 수 없을것 같습니다.
제가 떠나고 제가 단 하루 머물렀던,이제 또 다시 썰렁해질 당신자리의 옆을
밤새 뒤척이며 마음으로 쓸어내리고 계실 당신이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욕실의 세면장위에 놓인 두개의 칫솔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것인데 오기전에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치워두고 올걸
그냥 와 죄송합니다.어젯밤 당신과 함께서서 양치질을 하는데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메게 \"할머니..\"라고 부르지 못할 날이 온다면,
이렇게 나를 위해 미리 칫솔을 사다 놓으시며 세심한 신경을 써주실
당신을 못뵐 날이 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억울했던 당신의 질곡의 세월을 제 가슴 한켠에 같이 뭍고
평생을 그리워만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직도 당신에게 무능력한 어린손녀를 용서하십시오.
가책을 느껴도 오롯히 당신을 등지고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못되먹은 손녀를 욕하십시오.
앙상한 가지를 통해서도 생명을 떠올리셨던 당신처럼 나도
이 가슴을 찢듯 추운 시간들속에서 서 계신 당신의 자리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흑백사진속에 깐 알밤같이 이뻤다던 손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꼿꼿한 당신의 등뒤에 업혀,밤처럼 검은 당신의 머리카락에 이마를 대고
잠들고 싶습니다.그 시절로 당신을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우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