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을 빗어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었으며, 그 진흙인형의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넣었다고 한다. 입김의 생명력이 진흙인형의 혈관을 만들어 피가 흐르게하고 뼈를 생성시키고 근육으로 보호하게 하여 온전한 인간의 형상이 되었으리라. 바로 그때, 그 입김을 통해 수많은 감정이 마른논바닥에 물기가 스며들듯 흘러들어갔을것이고 그 중엔 생각이라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왜 하느님은 인간에게 생각의 자유를 주셨을까?. 끊없이 무한한 곳으로의 막연한 여행을 시작할 수 밖에 없도록 왜 그러하셨을까?.
생각의 끝자락을 잡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커다란 호수속에서 마치 엄청난 중력에 의해 밑으로 밑으로 끌려내려가듯이 허우적대다가 가라앉는 비주기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영원히 떠오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마도 그 호수속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비벼대며 허우적대고 있으리라. 그곳엔 상처난 나의 생각도 함께 있으리라. 파스칼은 생각이라는 커다란 호수속에서 활기차게 물장구를 치며 떠오른 몇 안돼는 사람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 파스칼이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말한 이유가 절실하게 궁금하다.
생각이란 하면 할수록 그 모호함의 파장이 커져만가는 것 같다. 생각은 자유로움이 아니라 구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생각속에서 생활하는 피조물일 뿐일 것이다. 논하고 평하며 찬성하고 반대하는 흐름속에서 쓸려가는 물줄기일 뿐일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면서 스스로 혼돈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소금쟁이가 건드리고 간 잔잔한 여운이 남은 소용돌이 속으로 휘감기듯 빨려들어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례 그렇게 사고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끼여서 말이다. 너와 나, 그리도 당신도 그 혼돈속에서 헤어나올 수는 없을것이다. 한 줌의 진흙으로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말이다.
가끔씩 멍한 상태에 놓일때가 있다. 찌지직거리는 옛날 필름처럼 흐릿하고 거센 바람에 물결마저 화가나 마구잡이로 헤쳐놓은 생각의 호수, 바로 그 순간이 생각이 가지고 있는 태풍의 눈은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을 즐기는 인간은 거의 없다. 중독. 그렇다. 생각의 단절에서 오는 금단현상이다. 헤드뱅잉을하며 제자리로 돌아온들 생각하는 인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영원히 생각해야한다.
생각하는 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속에서 외롭고 기약없는 처절한 싸움을 겪으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겠지만, 생각하지 않는 자는 평온이 지배하는 고요한 쉼터에서 퇴보하는 자신을 집단화에 엮여매어 위로하며 토닥거리다가 사라질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힘들고 버거워서 그만두고 싶을때가 있다. 난 아직도 나의 생각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대학4년동안은 그 절정기여서 내내 괴로웠다. 호수 밑바닥까지 가고자 했었다. 끝은 없었다. 아니, 내가 끝까지 가보지 못한것일 것이다. 다시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 곳에 대한 평안보다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