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하나 달랑 사는집 우편함속은 늘 비어있다.
간혹 고지서라든지 주인아찌가 보낸 메모라든지.
그게 전부다.
그러나 오늘은 하얀 곰돌이 그림의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오늘이 아니라 어쩌면 며칠전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선배언니의 편지..
매일 지친 일상에 우편함 속 들여다보기도 귀찮아했던 나인데
무엇에 이끌렸을까..오늘은..
아마도 밤새 기다린 언니의 마음이 내 눈을 돌리게 했나봐..
너무나 미안했어.
벌써 몇주전에 안부의 편지가 왔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나 힘드니까 이해해줄거야 하는 혼자만의 변명으로
그렇게 몇주를 흘려보내버렸었는데..
언니는 그편지가 내곁에 오지 못한걸로 알았어..
나의 지나친 게으름때문에 지나친 자만심때문에..
(언니는 언제나처럼 날 이해해줄거야..라는..)
언니의 마음을 아프게했나보다.
그렇찮아도 아파하고 있는 언니에게..
올가을엔 가을앓이를 심하게 할것 같다는 언니의 말이
왜 그리도 휑하게 들리는지..
언니는 11월의 아주 맑고 높은 하늘을 싫어한다고 그랬지.
시리도록 푸른날은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고..
11월에 밤하늘은 유난히도 반짝일거야.
높고 맑은 가을하늘이 밤이라고 달라질까.
가을밤하늘은 말이야.
우리가 추위를 느끼는 만큼 별도 추위를 타기 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대.
이불이 없으니 잠을 잘수가 없겠지...
따뜻한 엄마별도 가까이에 없기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겠지.
그래서 겁에 질린눈 반짝이며 까만밤 하얗게 지새며 또랑또랑해진대..
그래서 가을밤하늘은 더 빛나는거래..
겨울하늘은... 그럼 더 빛나겠네..^^
..
그런.. 가을밤에 언니가 조금은 덜 아파했으면 좋겠는데..
글쎄..제제는 어떨까..
고작 배가 고파 엉금엉금 기어서 옷을갈아입고.
지하철역에서 긴 걸음 하기 힘에겨워 택시타고 쪼르르 달려오는 이 철없는 제제는
이 가을에 과연 무슨생각을 하고 지낼까 언니..
후후~
...
추억은 설레임과 그리움 같은게 느껴져야한다고...
정말 그럴까..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해.
언니에게 처음으로 인사가던날..
밑에서 그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거든.
긴 파마머리를 늘어뜨린 나를보고 다른언니들은
\"쟤,뭐야?\" 하는 눈치였는데
언니만은 생긋한 미소로 날 반겨주던거..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였나봐.
힘들면 언니한테 늘 기대고말았던 내 스물두살에서 지금까지.
키가 큰 언니에게 기대면 언제나 따스했고 마음이 놓였어.
마치 엄마같았지..^^;;
나도 이젠 그때의 언니만큼의 위치에 있어.
그래서 언니를 많이 본받고 싶은데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는 언니의 동생은 눈앞에 현실만을 생각하며 살아.
이런나를 무척이나 기특하고 대견해하는 언니를 보면 참 많이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나 아무것도 아닌데..여전히 그대로인데..
..
언니..
이번가을엔 꼭 언니랑 2년전 그때처럼 가을산에 놀러가기로 한 약속지킬게.
어디가자고 하면 저만치 도망가는 제제가 그때도 투덜대며 따라나섰더랬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전 산에라고는 못 오를 나라며 끌고 갔었잖아.
아니..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그랬지. 날위한 산이라며..후후~
그때보단 나 많이 튼튼해졌으니 올해 가을엔 좀더 이쁜 산에 오르자 언니..
그때처럼 난 영이언니랑 번데기먹구..^^;; 언니는 도망가고 그러면서 산에 오르자 언니..
잼있을거야...지금부터 기다려지는걸..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이렇게 지친 주말에 우편함에 편지 꽂아주는 언니두 있구..
작년가을처럼 시월의 마지막밤에 날위한 약속해주는 친구도 있구..
그사람 없어도 난 많이 행복한 사람이야..그지..?
그런데 왜 지금 눈물이 나려는걸까..
후후~
눈물....잊고 지냈던 단어였는데.
앞만보며 달려왔던 나에게 눈물이란 놈은 항상 저만치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오늘은..
시린 바람때문인지..아니면 언니의 편지때문인지..
잔잔하게 방안가득 퍼지는 음률때문인지..
눈물이 난다..
나때문이겠지뭐..
그 다른 이유도 아닌 나..
나.때.문..
왜이리 얘기가 길어지는걸까..
그냥 언니한테 편지답장이나 쓰면 될것을..
무엇이 날 또 잡고 있는건지..
...
..
..
언니야..제제 오늘은 조금만 아파하고 다시 오늘이전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거야.
오늘은 안 바쁜가보다..
이렇게 옛생각에 언니생각에 느긋하게 징징거리기도 하구..
언니말대로 귀찮아도 힘들어도 치료꾸준히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언니 볼 수 있었음 좋겠다.
그래야지 또 제제가 언니한테 기대지..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언니들한테 기댈 생각만 할까..
참 많이 못난 동생 둔 덕에 언제나 위로의 말 준비하고 다녔던 언니.
고마워요.
이가을 언니가 가을앓이 하지 않도록 이젠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언니는 또다시 이해해줄까..
너무 이기적이지..난..
이건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네요..
늘 미안하다 그러고..
..
...
행복해야해요..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