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2의 늦가을 때부터 나는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뭐라 할까,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한 부정을 하고 싶었달까. 하지만 곧 잊혀지기 시작했고 중 3 여름방학이 될 무렵에는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가끔씩 떠오르면, '쓸데없는 걱정들로 가득한 시간이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났다.
그런데 중 3 겨울, 내게 아주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중 2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 두렵기도 했지만 곧 괜찮아 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내 가장 깊숙한 부분의 구석의 어두운 곳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여 점차 내 생각을 지배해 갔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애타게 갈구하는 '욕망' 이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난 알지 못했다. 무척이나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고, 조금씩 세상과 동떨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차 세상과 나를 둘로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세상과, 내가 받아들이는 세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나와, 무방비 상태의 나로.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데미안' 은 많이 들어 보았던 책 제목 이었고 그래서 다른 문학 작품과 별다르지 않게 그저 그런 얘기들-내겐 세계 문학이 그리 감명 깊게 와 닿지 않기 때문에-중의 하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단 몇 줄로 나는 그 책 속에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책 속의 싱클레어와 함께 살았다. 그와 함께 숨쉬고, 그와 함께 잠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엔 그가 나의 연인이었고, 사랑이었다.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나의 현재 또는 과거,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고 현실에서조차 그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 한 구절 한 구절에 까닭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저 마냥 슬프고, 괴로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내 의식은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래된 연인처럼, 더 이상 설레이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이상했던 건, 다른 책들과 달리 결말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싱클레어를 묻어버리고, 한 동안 찾지 않다가 다시 꺼내서 추억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였다. 다시 본 그는 변하지 않았지만, 아주 많이 변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린 그를 보면서, 오히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더 편히 그를 대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오래 전 희미하게 사라졌던 결말도 명확해져 갔으며, 점차 안정된 사랑으로 그를 대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면,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온' 느낌이었으며 '아프락사스' 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모두들 한 번 씩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무언가 금지된 것을 해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책 속의 싱클레어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특별히 이래야 한다, 라는 설교조의 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자신의 일생으로 말이다. 그것도 중 3과 고 1 사이라는, 내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서.
굳이 특별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이 책은 읽어보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내 안의 나에게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세상과 동떨어져 살던 또 하나의 내게, 손을 내민 것 같다. 더 많이 싱클레어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언젠가 다시 그와 만날 날까지 간직할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그 때 만날 때는 조금 더 내 안의 나와 그에게 가까워 질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