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도둑 *
차라리 훔쳐가려면
두 눈을 훔쳐가지
아예 처음부터 그댈 볼 수 없게
두 눈을 훔쳐가지
어찌 그대는 내 마음만을 훔치셨나요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내 텅 빈 마음
그대여,
사무치게 그리운 그대여,
훔쳐간 마음 돌려줄 수 없거든
허물뿐인
내 청춘마저
송두리째 훔쳐가세요
-김현태 시집 <마음도둑 사랑도둑> 중에서
교육방송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 마지막에는 나와 내 친구만 남은 독서실의 휴게실.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하는 시간이었지만 나와 내 친구는 휴게실에서 아톰머리와 곰 한 마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를 상기하며 공부를 해야 했지만 나와 내 친구에겐 어느것도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의 똑똑한 아톰과 내 친구의 우직한 곰. 그들은 자정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교육방송을 본답시고 맨 앞자리를 찾아 앉아서 TV가 뚫어져라 쳐다볼 그들이었는 데. 모범생인 그들이라도 땡땡이치는 날이 하루쯤은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힘들어 막 일어서려는데 빼빼마른 아톰과 덩치가 큰 곰이 휴게실 문을 요란하게 열며 들어섰다. 순간 내 심장은 멈추는 것 같았다. 얼른 내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녀도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실 그들을 만난다 하여도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슬금슬금 쳐다보는 것이 다인데. 그 시절 그냥 바라보는 것만이라도 좋았다.
나중에 그들 때문에 우리 둘은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날마다 복도에 나와 문쪽만 바라보고 휴게실에 앉아 잡담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일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굳게 결심을 하고 그들에게서 떠나기로 하고 독서실을 옮긴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빼았겼던, 그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던, 그 마음도둑을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김현태의 <마음도둑 사랑도둑>을 보면서 그를 생각하였고 독서실의 어두운 형광빛을 기억하며 잠시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났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야기한다. **에 갈증이 났다고. **에 배고팠다고. 그럼 우리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에 갈증이 나는 것은 아닐까.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것처럼 보고 있어도 목소리를 들어도 자꾸 보고 싶은 마음.
'사랑'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은 가볍게 어렵지 않게 풀어놓은 김현태 시인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에서 내가 배운 것은 사랑은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움
이젠 가야지, 이젠 가야지
발걸음을 내디뎌도
유독,
내 마음만은 발가락 반대편에 있습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같이 있어도 그리운. 그러니까 사랑하기에 그리운.
지금 누군가의 사랑의 받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자꾸 감추지 말고 들어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직 어린 마음에는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르기도 하지만 그냥 순수하게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순수하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어갔으면 한다.
<마음도둑 사랑도둑>에 나오는 키다리 소녀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