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열린 공간. 밀실, 닫힌 공간.
최인훈의 소설에서 이 둘의 차이는 단순히 반대의 뜻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공동체와 개인, 평등과 자유로까지 확대해볼 수 있는 단어이다.
이 소설이 씌여진 1960년대는 남북이 모두 그르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이 소설의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작가 최인훈이 말해주는 양비론(兩非論)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이길래 문학 교과서에 이 소설을 실은 것일까.
주인공인 이명준은 남한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도이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 남로당원이었고 그 때문에 고문을 받은 이병준은 월북해 신문기자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해 인민군으로 참전하게 되고 낙동강 전투에서 잡혀 포로 수용소에 갇힌다.
형기가 끝나 이명준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남한과 북한.
자유가 없는, 강요된 평등의 나라 북한.
자유는 있으나 '실존하지 않는 자들의 광장 아닌 광장', 이상이 없는 나라 남한.
이 둘의 불완전한 상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명준은 차선의 길을 택한다. 중립국행.
그가 택한 중립국으로 가던 배 위에서 명준은 또다시 차선의 선택을 한다. 자살.
"차선의 길"이라고 표현을 해보았다.
남이냐 북이냐가 아닌 중립국을 택한 그의 선택을 말이다.
'모 아니면 도'를 택하길 강요하던 시대에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던 그들이 선 좁은 땅을 "회색지대"라고 했던가.
명준이 굳히 회색지대에 서고자 한 이유가 바로 최인훈이 말하려는 양비론의 중요한 열쇠가 될텐데.
단순히 둘다 불완전해서 중립국을 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차선의 길'을 이렇게 보면 안될까.
남과 북을 모두 버리기 싫은 작가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만큼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뉘어진 조국을 어느 하나 택할 수 없었다고.
그래서 명준은 선택에서 회피하는 방법으로 중립국행을 택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중립국행을 택한 명준이 그곳에서의 생활을 잘 영위해가는 것이 아닌,
중립국행 배에서 자살을 택한 것으로 더 굳어졌다.
완전하지 않은 결말로 작가는 조국의 비극을 강하게 부각시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아직도 명준의 조국은 완전한 하나가 아닌, 그가 선택을 거절한 모습 그대로 양분되어 있다.
"광장과 밀실"이 이 글에서 뜻하는 자유와 평등이 적절히 조화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는 조국으로 거듭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