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낭패감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을 만났을 때 그 충격은 대단히 큰 여파를 남긴다. 내가 악수를 하고자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은 그 동작을 결투의 몸짓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서툴게 표현된 내 진심어린 한 마디를 코웃음치는 냉소로 날려보내는 누군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나는 낭패스럽다. 더구나 그들이 평소에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주변 인물일 적에는 그 낭패감의 정도가 한층 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도 어떤 실타래에 쌓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열 네살의 세영이가 제대로 파악해닐 수 없는 어머니의 심리, 그리고 삼례와 옆집 남자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들이 나에게도 당황스럽고 난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가능하기 어려웠던 것은 세영의 어머니인, 길안댁의 태도였다. 남편이 이웃 마을의 부이니과 바람을 피우는 남사스러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몇 해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삯바느질로 외아들과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삶은 마치 톡부러질 것 같은 자존심 하나로 바들바들 버텨나가는 외줄타기 같았다. 아무도 훔쳐볼 수 없는 공간 속에 들어앉은 그녀가 부엌 문설주에 걸어놓고 있던 홍어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이 책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여자, 삼례에 대해서도 이 묘한 베일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눈내리는 밤 우연히 부엌으로 숨어든 삼례의 방자한 언행을 따라가다보면 그 극을 이루는 곳에 분명히 파랗게 질린 길안댁이 있어야 했다. 술집 처녀들의 바느질감을 걷어왓다가 야단맞는 삼례, 남의 물건에도 거리낌없이 손을 대는 뻔뻔한 그녀 그리고 나중에는 술집의 작부노릇까지 마다않는 삼례는 모든 성격상 길안댁이 적의를 품고도 남을 존재였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삼례는 길안댁과 통하는 길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내가 간혹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뜻밖의 단절감을 느끼고 당황했듯이, 이책의 끝머리에서 삼례와 길안댁이 보여준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발견했을 때도 나는 뒤통수를 탁 얻어맞은 듯한 낭패감에 빠졌다.
어린 세영의 섣부른 상상을 넘어서는 곳에, 그리고 처음에는 꽤 그럴듯해 보였던 이웃집 남자의 아리송한 행동들이 우습게 드러나 버렸을때 너눈 몰라 덜어너눈 두 여자의 뒷그림자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자들의 마음은 어떤 끈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내미는 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또 내게 드밀어진 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일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도 마음은 마주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얼굴을 맞댄 채 몸을 비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이라면 이 책의 두 여자처럼 극점에서 마주보고 있더라도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통로 하나쯤은 갖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낭패감을 느끼는 기분, 솔직히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동주이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