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녀가 노란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내가 두터운 외투를 껴입은 것으로 봐선 아마도 겨울의 한가운데쯤 되었을 게다.
키스의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것을 첫키스라고 정의하기 쉽진 않지만, 어릴 적에 부모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뽀뽀나 앙증맞은 조카의 입술 훔치기마저 첫키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그녀가 생기기 전, 그러니까 군대 가기 전에 묘령의 화류계 여성과 나눈 하룻밤 풋사랑의 과정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딱 해치운 인스턴트식 키스도 첫키스의 범주에 넣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이것 떼고 저것 떼면 결국 남는 것은 그녀와의 키스가 나의 첫키스가 되는 셈인데, 나로서는 30대 초반의 늦깎이 키스였으니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냐며 껄껄 웃을 판이다.
첫키스의 장소는 어느 으슥한 카페의 구석진 곳이었는데 나비 날개 모양을 한 나무 칸막이가 우리를 가려주는 아늑한 자리였다. 나는 그 날 일부러 키스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따라 묘한 밤의 분위기에 이끌린 탓도 있었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희뿌연 불빛이 우리를 더욱 좁은 공간 속으로 밀어 넣은 탓도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입고 있는 스웨터의 노란 빛깔이 나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독 노란 색깔을 좋아해서 병아리와 개나리가 내 주위에 살아 남는 법이 없었다.
아무튼 나의 손이 그녀의 왼쪽 어깨 위에 걸쳐지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고 그 수줍음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녀의 입술에 나를 가볍게 포갰다. 그런데 평소에 영화와 비디오도 보고 책으로도 익히며 머리 한켠에 심어 두었던 키스비법은 말 그대로 머리에 심어져 있을 뿐이고 입으로 전달되지를 않았다.
입술이 닿는 순간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으며, 몽롱한 기분은 간 곳이 없고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녀의 앞 이빨 사이로 내 혀를 밀어 넣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 것은 짜릿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여자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남자 본연의 의무감에서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어설픈 첫키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좌우지간 나의 혀가 그녀의 입 속에서 어떤 항해를 하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웨이터가 물을 갖다 주기 위하여 칸막이를 갑자기 열더라도 상관이 없었고, 둘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붙들고 있어 목고개가 뻐근해져 와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솔직히 별 짜릿한 흥분이나 황홀한 기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여자라는 동물은 무엇이든 상상으로 느끼기를 잘해 키스의 순간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 포장하여 느끼고 또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녀들은 첫키스의 경험을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구름 위를 걷는 듯 무아지경이었다느니, 눈을 감고도 쏟아지는 별을 보았다느니 하며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면 말이다.
키스가 끝난 뒤에 그녀에게 처음 나타난 변화는 그녀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는데 키스하기 전보다 머리 숙임이 더 심해져 머리가 탁자에 닿을 듯이 마냥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여자의 가장 큰 매력을 수줍음으로 여기던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였지만, 여태 그녀에게 남자의 흔적이 없는 순수함이 나에게 더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그녀는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입술이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침밥을 먹는 내내 혹여 식구들이 알아차리기라도 할까 봐 또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누런 된장국만 퍼먹었다고 했다. 그 멍의 상흔은 내가 그녀에게 준 첫키스의 선물이 된 셈이었다. 나에게도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의 외투 윗도리에 그녀 스웨터의 노란 털이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그것을 떼어 내느라 반나절은 족히 보낸 것 같다.
그녀 입술에 맺힌 멍은 립스틱으로 덧칠해 가릴 수 있었지만, 내 옷에 묻은 노란 털은 결국 다 제거되지 못하고 예리한 어머니의 눈에 띄었고 꼬치꼬치 추궁 당하던 나는 마침내 며칠이 지난 후 그녀를 어머니 앞에 앉히게 되었다.
그 수줍음 많던 아가씨는 이제는 내 앞에서 방귀를 붕붕 뀌대는 아줌마가 되어 아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내 옆구리에 걸리적거린다.
12.18
항상 첫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면 참 좋겠네요. 따뜻한 정이 느껴집니다.
01.27
여자....하긴...좋아하는사람앞에선 수줍어하다가 정이들면 서로에게 편하게 기댈수있는 존재 아닐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