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안녕하세요?
평소에 당신의 이름 끝 자가 발음하기 힘들어 '헌'이라고 지칭하다가 여보라는 말을 문두에 놓고 보니 조금은 쑥스럽군요. 내 욕심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동생 이름 부르듯 함부로 대하다가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여보라고 불러 봅니다. 그동안 못난 나를 만나 참 고생 많았지요. 그 어떤 남편보다도 당신을 호강시켜 주리라 다짐했건만 어쩌다 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내 마음도 편치가 않답니다.
10년 전 서로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마음을 갖자고 맹세하며 결혼했지만 어디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쉽게 흘러가나요. 니가 맞니 내가 맞니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티격태격 밀고 당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정이 붙는 것이지요.
그래도 당신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것이 있답니다. 맑은 물과 흐린 물이 만나면 물이 흐려지듯이 당신의 그 맑고 고운 심성을 내가 다 흐려놓은 것만 같아 가끔 당신을 생각할 때면 가슴 저 밑바닥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 말못할 수많은 얘기들을 어찌 여기 지면에 다 옮겨 적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잠시 이렇게 지면을 빌려 글을 적는 것은 그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어제 저녁에 당신이 정성스럽게 내민 밥상을 앞에 놓고 내가 철없이 밥투정을 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이런 답니다.
어제 당신은 낮 동안의 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갔었지요. 나는 그때 당신의 손에 우럭 몇 마리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퇴근길에 남편이 생각나 시장엘 잠시 들렀나 봅니다. 내가 언젠가 그랬지요. 죽어 오래된 물 간 생선이 아닌 막 바다에서 끌어올린 펄펄 뛰는 볼락이나 우럭으로 매운탕 한 번 해먹고 싶다고요. 작년만 해도 뻔질나게 다녔던 바다 낚시 덕에 밥상에서 싱싱한 볼락 매운탕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지요.
그런데 그게 언젯적 얘깁니까? 가끔 술맛이 그리운 술꾼처럼 머리에서 바다 생각이 떠오를 때면 갯바위의 매운탕 맛이 입안에서 감도는 것을 난들 어떡합니까? 그래서 우럭 매운탕을 해달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에게 노래불렀던 것이지요. 비록 양식한 우럭이지만 국물 맛이 진득한 것이 갓 잡아 올린 볼락으로 매운탕 한 맛 못지 않거든요. 싱싱하고 쫄깃함으로 치면 바다에서 직접 낚시로 잡아 올린 물고기만 못해도 어디 물 간 생선에 비길라고요. 그런데 오늘 당신이 짬을 내어 시장을 들렀더군요.
정말이지 나는 당신이 우럭 몇 마리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올 때부터 매운탕에 대한 기대로 침을 꼴깍꼴깍 삼켜야만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우럭 매운탕이 아닙니까. 간혹 횟집이나 마트에서 우럭을 바라보고 매만지기만 했지 값이 비싸 어디 사볼 엄두라도 냈던가요. 고작 물 간 고등어 몇 마리로 대신하곤 했지요. 사실 얼마 전에 당신이 마트에서 우럭을 손에 집을 때만 해도 내가 말렸습니다. 어디 내 입만 입인가요? 가족 전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사고자 하는 것이 내 속뜻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 큰 맘 먹고 우럭 몇 마리를 사왔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우럭 몇 마리를 사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장에 들른 당신의 그 마음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사실 우럭 매운탕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거실 안을 진동할 때만 해도 나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당신이 매운탕 뚜껑을 열었을 때 뿌연 김 속에 내비치는 그 진홍빛 국물이 나의 입맛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벌써 마음의 숟가락으로 몇 번이나 국물을 퍼먹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어느새 바다를 마주하고 갯바위에 앉아 있는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 혀에 닿은 맛은 그런 생각을 순식간에 불식시켜버렸습니다. 혀끝을 톡 쏘는 강한 국물 맛에 나는 당신이 실수로 후추가루를 쏟았나 생각했습니다. 나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기대는 화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밥투정으로 이어졌지요.
그러나 그 맛은 산초 맛이었더군요. 당신은 산초로 간을 맞추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넣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하였지요. 당신은 맛을 내기 위해 산초를 사용했다 했지만 나는 그런 당신을 매운탕에 무지한 여자라고 몰아 부쳤지요. 음식을 먹기만 하는 사람은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의 고충을 잘 모른답니다. 아마 국물이 뜨거웠을 때 간을 보는 것하고 조금 식었을 때의 맛이 틀리나 봅니다.
그런데 내가 투정을 좀 하였기로서니 안방으로 갈 것은 또 뭡니까. 많이 서운했나 보군요. 늦은 시간에 배고픔도 참고 시장에 들러 생선을 고르고 집에 와 쉴 틈도 없이 정성스럽게 장만하였을 텐데, 당신이 미처 밥 한술 뜨기도 전에 내가 그런 말을 하였으니 서운하기도 했겠습니다. 당신의 심중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불찰이 큽니다. 미안하군요. 당신이 큰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라면 내가 너무 염치없을까요.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을 달래러 애도 써봤지만 당신은 돌아앉은 바위처럼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자정을 넘어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당신의 허전한 뒷모습이 나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감싸줌으로써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지긴 하였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은 변함이 없답니다.
여보, 어제 먹다 말은 우럭 매운탕을 오늘 집에 가서 개가 핥듯이 깨끗이 먹어 치울 테니 두고 보구려. 가시를 하나하나 발라내어 밥상 위에 쌓아 두리다. 그러면서 자랑하듯 말할 것이요. 이게 내 미안함의 표시라고.
12.15
님의 생활입니까? 어쩌면 저하고 그렇게 흡사할 수가...
12.17
세상 여자들이 모두 부러워할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셨네요. 나두 장가가면 그래야징? 감사^^*
12.19
참으로 다정다감하신 분이십니다.여자들은 그래요 정성껏 만들어온 음식에 투정을 부리시는 남편이 얄밉기도하고 무안하기도 하지요.사랑하는 아내가 만든음식은 맛보다 그 정성을 드셔야 좋을듯합니다.참 행복해보이십니다.
12.23
행복한......님 글을 읽으면..저두 님처러 행복해야지..해야지..하구 그래요~그 예쁜 사랑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