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결에 딸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새벽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얕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의 곤한 잠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학교에 지각한다고 저렇게 난리를 피웁니다 글쎄. 늦은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딸아이를 보며 어찌 그리 나를 닮았는지요. 어물거린 것은 자기인데도 남 탓으로 돌리니 말입니다. 옛날에 자식은 부모 못난 것만 닮는다고 하는데 꼭 딸아이와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 좀 늦는 것이 뭐 대수냐 싶어서 왜 우냐고 물었습니다. 나이 든 여선생님이 손이 가벼워 잘 때린다고 그러는군요. 때에 따라 30센티미터 자로 아이들의 여린 손등을 제법 세게 내리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면서 담임선생님의 손버릇에 대해 익히 풍문으로 들어온 바라 여차하면 학교로 전화를 하거나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한마디하려던 참이었는데, 딸아이가 우는 진짜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지각생을 모아 청소를 시키니 그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무용을 할 수가 없다는군요.
울면서 현관문을 나서는 딸아이의 등을 보며 뒤따라가서 아이를 좀 다독거려주고 싶었으나 괜히 의타심만 생기게 하여 버릇이 될까봐 참았습니다. 딸아이를 그렇게 보내놓고 베란다 창가에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꼭 딸아이 때문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손버릇이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아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불현듯 그 옛날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인지요? 그러고 보니 당신이 딱 내 나이쯤 되었겠군요. 나는 딸아이보다 한 살 많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요.
그날 당신은 논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나 묵묵히 일만 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것도 항상 남을 이롭게 하고 정작 당신은 손해만 보는 그런 요량 없는 모습으로요.
학교에서 거기 논까지의 거리가 얼맙니까? 얼추 20리는 되는 것 같군요. 어린아이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그 먼 길을 걸어 겁먹은 얼굴로 울먹거리며 당신 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겠는지 내가 학부모가 돼 보니 그 심중을 조금은 알 것 같군요. 그것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아이가 땀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당신 앞에 서 있었으니 부모 마음에 얼마나 기가 찼겠습니까.
공납금을 제때에 내지 않았다고 선생님이 집으로 내쫓아 돈을 가져오라고 하였으니 어디 집에 간다고 없는 돈이 생깁니까.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답답해서 그러셨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적당히 눈치 보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는데 반해 나는 바보스럽게도 요량 없는 당신을 닮아서인지 그 먼길을 걸어 당신을 찾았던 것이 잘못이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담임선생님도 딸아이의 선생님처럼 여선생님이었군요. 딸아이 선생님보다 많이 젊은 처녀 선생님이었지만요.
나는 당신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언제나 별로 말이 없는 당신이었지만 일하다말고 삽을 팽개치고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어딜 가시기에 그 발길이 설마 학교로 향하는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엉겁결에 당신을 뒤쫓아 한참이나 늦게 학교에 도착하였는데 그때까지도 당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교무실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입장에선 미납 공납금 때문에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내쫓겨 그 먼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입장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선생님의 총애를 받아 왔었고 각종 미술대회에 나갈 때도 선생님이 나의 가정형편을 고려해서인지 참가비용을 모두 대신 지불해 주셨답니다. 그것 때문인지 나는 그날 선생님 보기가 민망하여 당신이 가신 후 몰래 교실로 숨어들어 가방을 챙겨 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를 쳐다보는 선생님의 원망 섞인 눈빛을 어린 나이에 또 한번 감내해 내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그날 이후로 당신도 조금은 후회를 하셨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렇게 홧김에 학교를 찾아간다고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선생님의 홀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나도 학교에 전화를 하거나 학교 게시판에 글 올리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아야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라 딸아이가 선생님과 마주 대할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선생님이 맡을 다른 반 학생들을 위해서도 선생님의 손버릇에 대해 누구든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괜히 내가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나의 소심함도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딸아이는 학교에 갔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아이는 내 손아귀를 벗어난 화살과 같습니다. 아이와 선생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날씨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때가 되면 잊혀지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비고사를 망치고 밤새 잠 못 이루고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대문을 나설 제, 당신은 일부로 거름밭에 일하시는 척하며 나에게 해줄 말을 준비하고 계셨지요. 평소 말이 없는 당신이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답시고 내뱉은 말치곤 너무나 우스꽝스런 말이었지만, 당신 또한 잠을 못 이룬 표정을 보고선 그 자식사랑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 자전거 핸들을 움켜지며 크게 되리라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을 하였건만, 그 이후로도 계속 당신을 실망만 시킨 것 같아 여태까지도 내 맘이 편치 않습니다.
문득 당신이 계신 시청 뒤 풀섶이 궁금해집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춥진 않으신지요. 얼마 전 시사(時祀)때 당신의 무덤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당신의 뼛가루를 할아버지 무덤가에 흩뿌린 지도 어언 계절이 세 번 바뀌었군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 당신. 어쩌면 그 흔적없음이 남겨진 우리 자식들에게 해준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바쁘고 멀리 있어 당신을 자주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무덤이 없는만 못하니까요. 그 죄스러움에 마음 아파할 자식들을 미리 배려하여 한 줌 재로 변하셨는지요.
당신의 손자들이 당신의 고마움을 알기나 할까요. 모두들 자기가 잘나서 하늘에서 툭 떨어진 줄 알지 조상 탓에 이 땅에서 숨쉬고 있는 줄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지요. 앞으로 세월이 갈수록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는 모두 무관심해질 것 같으니 이것을 변화하는 세태 탓으로 돌려야지 그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래서 만약 무덤을 썼더라면 아마 모르긴 해도 먼 훗날 당신의 무덤가에는 잡풀만 무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우리 곁에 아버지란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 배치도 씨.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늘로 꼭 235일째 되는 날입니다.
12.10
부친을 향한 애닯음이 간절하군요. 이번 방학 땐 7년전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 다녀와야겠네요.
12.11
친구집에 갔다가 친구아버님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가 제 맘이 화들짝 놀란적이 있었지요. 마냥 웃으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12.19
늦은감이 있지만 오늘에야 우연하게 님의 글을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좋은글이라 생각을 합니다..